청주에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 서원술성·서원경성을 축조했고, 고려시대에는 청주성·청주나성을 축조하였으며, 조선시대에 청주읍성이 축조되었다. 2011년 1차 발굴조사는 조선시대 청주읍성 성벽추정구간 가운데 서문추정지로부터 남쪽지점 일부에 대해 실시하였다. 발굴조사에서 성벽의 기저부를 약 23m 가량 확인하였으며, 여기에서는 고려∼조선전기에 해당하는 도기·자기 및 기와류 등 다양한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여기에 출토된 유물들을 고려하면 조선시대 청주읍성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터전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1920년대 청남문·남석교와 2011년 청주읍성 기초부 및 뒷채움석과 지대석 및 기단석 모습]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성벽기저부의 구조는 사질토 위에 기와 및 할석을 점토와 섞어 다짐한 다짐층을 두고 그 위에 할석으로 평적한 지대석을 시설하였으며, 다시 그 위에 규모가 큰 할석으로 기단석을 놓아 기초를 마련하고, 그 후면에 할석을 점토와 섞어 뒷채움을 한 전형적인 조선시대 읍성의 기저부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 외에 조사지역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성벽기저부의 폭은 확인할 수 없었다. 금번 발굴조사는 조선시대 청주읍성 성벽구간 가운데 극히 일부지역에 대한 조사에 불가하였으나 처음으로 성벽의 실체와 기저부의 구조를 확인하였으며, 확실한 성벽의 진행방향 등을 파악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 여기에 청주읍성 성벽추정구간 곳곳에 성벽 기저부가 남아 있을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2012년 발굴조사는 조선시대 청주읍성에 대한 2차 발굴조사이다. 지난 2011년 1차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조선시대 청주읍성의 성벽기초부와 연장하여 성벽의 잔존 폭과 성벽기초부 및 성내 시설 등을 확인하고자, 청주 중앙공원 서쪽 담장 주변과 동남쪽 모서리 부분에 대하여 실시하였다.
중앙공원 서쪽 담장주변에서 성벽의 폭을 확인했는데, 성벽 바깥의 성벽기초석 외연에서 부터 성벽 안쪽 끝부분에 해당되는 다짐층까지 약 7.5~8m가량 이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청주읍성의 성벽 안쪽 끝부분의 내황(內隍)으로 추정되는 도랑을 확인하였다. 또한 읍성 내부지역에서 건물지 초석 등을 확인하였다. 청주읍성의 동남쪽 모서리 부분 발굴조사에서 잔존유구가 확인되어 읍성의 진행방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 발굴조사 지점으로부터 회곡되는 성벽은 지금의 도로망과 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조선후기 청주읍성도에 보이는 모습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청주읍성 다짐층 출토 "城"자명 기와 세부모습]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주로 통일신라~조선시대에 해당되는 도기류, 자기류, 기와류 등 이다. 이를 통해 청주읍성 주변은 일찍이 통일신라시대부터 인구가 집중하여 번성하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고려시대 청주나성과 관련한 구조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에 축조된 읍성은 조선후기까지 개수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청주읍성 성벽구간 학술발굴조사를 계기로 2011년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성벽기초부와 연계하여 청주읍성의 성벽의 폭을 밝힐 수 있었으며, 그 외에도 청주읍성 동남쪽의 모서리 부분의 실체와 진행방향 등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성내에 고려∼조선시대 전기 무렵에 축조되었던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3차 발굴조사에서 서남쪽 회곡부에서 성벽의 기저부를 확인하였으며, 북서쪽 회곡부에서는 성벽의 내황추정지를 확인하였고, 북동쪽 회곡부에서는 교란되어 성벽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서남쪽 회곡부의 발굴조사 결과를 통해 구조는 기왕에 확인된 서벽구간 청주읍성 기저부와 마찬가지로 점토와 기와편 등을 혼입하여 기초를 다진 후, 지대석을 얹고, 기초석을 얹기도 하였다. 하지만 일부구간에서는 기초다짐 위에 지대석을 제대로 두지 않고 바로 기초석을 쌓은 뒤 높이를 맞추기 위하여 할석을 위에 두는 축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북서쪽 회곡부의 발굴조사 결과 2012년 청주읍성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내황으로 추정되는 토층과 유사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당시의 조사 성과를 통해 보면 성벽의 너비는 체성부에서 내황까지 약 8m정도로 현재 확인되는 내황추정지에서 8m 이상 밖으로 벗어나 성벽이 위치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청주읍성 서북쪽 회곡부는 시굴조사 지역보다 밖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더 높을 것으로 판단되며, 현재 청주읍성의추정선을 수정할 필요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청주읍성 I구역 성벽지대석 및 기초석 모습]
현재 잔존하는 성벽유구는 조선후기에 최종적으로 개수된 것으로 보인다. 성벽은 기저부만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일제시대 삭평되어 대부분 파괴되고 일부가 남아있는 상태이다. 성벽의 기저부 중 뒷채움부에서는 다짐을 할 때 채워넣은 청자편과 조선시대 분청사기편 등도 확인된다. 하지만 다짐층 내부에서 오목굽의 백자편 등이 함께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수차례 개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일부 통일신라시대 기와편이 등이 있고, 고려~조선시대에 해당되는 도기류·자기류·기와류 등이 주를 이룬다. 이 유물들을 통해 살펴보면 청주읍성 주변은 일찍이 통일신라시대부터 인구가 집중하여 번성하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에 청주읍성이 축조되어 수차례 개축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고려시대 청주나성과 관련한 구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전기에 축조된 읍성은 조선후기까지 개축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청주읍성 성벽구간 학술발굴조사를 계기로 이전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성벽기초부에서 이어지는 서남쪽의 회곡부를 확인하여 청주읍성의 방향을 알 수 있었으며, 북서쪽의 회곡부의 실체와 진행방향 등을 확인하였다. 이와 더불어 이전에 발굴조사를 통해 밝혀진 청주읍성의 잔존양상을 통하여 대략적인 청주읍성의 외곽선을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청주읍성에 대한 3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청주읍성의 잔존여부와 축조양상, 내부시설을 확인하는 등 다양한 조사성과가 있었다. 이러한 자료가 청주읍성을 중심으로 한 청주지역의 역사·문화적 연구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청주시에서는 청주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회복하자는 취지로 청주읍성 성벽구간 재현사업을 실시하였다. 청주읍성 재현사업은 발굴조사된 자료와 각 종 문헌사료를 토대로 관련 학계전문가들의 고증을 거쳐 이루어졌다.
[재현된 청주읍성]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2013, 『청주읍성 성벽구간 발굴조사Ⅰ』, 일광. 일부 내용 발췌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2014, 『청주읍성 성벽구간 발굴조사Ⅱ』, 을지출판인쇄. 일부 내용 발췌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2015, 『청주읍성 성벽구간 발굴조사Ⅲ』, 일광. 일부 내용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