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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기념물 진천 석장리 유적 [진천군]

작성자 전체관리자  조회수 356 등록일 2021-10-22

  석장리 유적을 발굴조사하게 된 계기는 매장유적이나 주거유적 등에 치중된 발굴에서 벗어나 고대의 생산유적에 대한 조사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철재(鐵滓)가 다량 채집되는 점으로 보아 대규모 고대 제철유적이 있을 가능성에 주목하여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자체 학술조사를 계획하고 발굴을 시작하게 되었다.

 

  

[조사지역 전경과 노 발굴조사]


  제1차 발굴조사는 1994년 10월 5일부터 11월 28일까지 국립청주박물관의 자체학술조사 사업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이 유적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국내외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에 포항제철 산하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의 학술연구비 지원을 받아 연차적인 발굴조사를 계획하여 제2차 조사를 1995년 6월 9일부터 10월 15일까지, 제3차 조사를 1996년 3월 28일부터 6월 25까지 실시하였으며, 1997년 3월 19일부터 4월 17일까지 제4차 조사를 실시하였다. 

  국내 처음으로 고대 철생산유적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진 진천 석장리유적에서는 A구에서 13기, B구에서 23기 등 많은 철생산 또는 철제품제작과 관련된 노적(爐跡)이 확인되었다. 앞서 살펴본 석장리 유적이 갖는 의의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한국에서는 최초로 4세기대로 편년되는 고대제철로의 실례가 발견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 백제고분 등의 여러 유적에서 많은 철제품들이 나왔지만, 과연 그것이 어디에서 어떠한 공정을 거쳐 만들어 졌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 석장리 발굴결과를 통하여 적어도 하나의 백제의 제철지점을 알게 되었고, 제철공정을 추정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획득하게 되었다.

  다음은 발굴된 유적이 그 규모나 구조가 매우 다양한데 특히 대형제철로는 그 형태상 일본의 고대제철로인 상형로의 조형으로 생각되고 있어 초기백제의 고도로 발달한 제철기술이 일본으로 전해졌음을 추정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고대 제철의 입지 선정과 그 조업 형태 등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즉 A구와 B구는 모두 작은 골짜기를 이루는 경사지를 이용하여 한정된 공간에서 집중적으로 조업하였으며, 다양한 노적이 밀집해 있어 매우 집약된 조업이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A, B區로 분명하게 구분되는 현상에서 볼 수 있듯이 일정한 공간을 두고 점이적으로 이동조업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어, 철생산 활동이 일종의 세트화된 단위로 이루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또 제련에서 단야(鍛冶)까지 일련의 공정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규모와 형태에 있어서도 장방형의 대형상형로를 비롯하여 원형로, 방형로, 장방형로 등 다양하게 나타났다. 노의 구조적인 면에서도 경사지를 이용하여 간단한 기초시설을 한 지상식과 반지하식 등이 확인되었다. 특히 A-4, 8, 9호와 B-4, 5호 노(爐)에서는 외곽에 'ㄷ'자형의 구덩이를 파고 그 내부에 노를 축조하는 새로운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아울러 B구는 A구에 비해 노(爐)의 규모가 다소 소형화되는 추세이지만 전체적인 노적의 구조나 분포에 있어서는 큰 차이점을 찾을 수 없고, B-8, 14, 21호 등과 같이 주변에서 단조박편이 검출되는 소형로가 많아 단야작업의 비중이 높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함께 A-1.2.3.4호와 B-7.11.12.23호 노적 등은 노의 형태와 구조가 비교적 분명하게 남아 있고 축조방법의 일면을 알 수 있어 고대제철로의 부원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송풍관과 범심편 출토유물]

 

  한편 철생산의 가장 기본적인 철의 원료문제에 있어서는 철광석과 사철을 모두 사용하였다고 생각되는데, 철광석은 별도의 대상유구에서 가열 또는 파쇄하여 제련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 노 주변에서는 철생산의 용매제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추정 석회석과 수골, 조개껍질 등도 출토되었고, 제철조업과 관련된 취사 및 祭祀行爲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도 확인되었다. 석장리 철생산유적의 년대문제는 노적주변이나 노와 동일한 퇴적층에서 출토된 고배(高杯), 개배(蓋杯), 발형토기, 단경호 등의 토기류를 통해서 추정이 가능하다. 대체로 A구보다 B구가 다소 늦은 시기에 형성된 유적임을 알 수 있는데, A구는 인근의 산수리·삼용리요지와 B구는 청주 신봉동이나 몽촌토성Ⅱ기와 평행한 시기로 보인다. 따라서 진천 석장리 유적은 3세기말-5세기초에 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A구 4-1호 노적 구덩이에서 출토된 목탄시료를 통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결과도 시료오염으로 추정되는 2건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연대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비록 계절적으로 한시적인 조업이 이루어 졌다고 판단되지만, 이곳을 비롯한 주변지역에서 상당기간에 걸쳐 철생산 활동이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진천 석장리 유적은 조사지역을 중심으로 구릉 곳곳에 제철유적이 밀집분포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초기 백제지역의 대규모 철생산거점으로 추정되며 지금까지 확인된 고대 철생산 유적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또 인근의 토기생산유적인 산수리삼룡리요지군과 함께 초기백제의 생산체제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판단되며, 고대철생산에 있어 제철로의 다양함과 그 기술적 수준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다만 여기서 사용된 철산지 확인과 연료를 생산해 낸 대규모의 목탄요의 확인 및 관련 주거유적의 발견 등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아울러 주변의 철생산유적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면 우리나라의 고대 철생산 문제는 한층 더 분명히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국내외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 유적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사적지정 등 제철유적에 대한 종합적인 보존대책이 수립되어야 하며, 행정 당국의 지속적인 관심이 요망된다.

 

국립청주박물관, 2004, 『진천 석장리 철생산유적』. 일부 내용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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