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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Archives of Chungbuk Cultural Heritage

문화유산 검색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국가지정 > 국보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문화유산 검색
한자명 忠州 塔坪里 七層石塔
영문명 Seven-story Stone Pagoda in Tappyeong-ri, Chungju
지정일 1962-12-20
관할시군 충주시
이칭/별칭 국보 6, 중앙탑, 중원탑평리칠층석탑

문화재 설명정보

충추 탑평리 칠층석탑은 충주시 중앙탑면(구 가금면) 탑평리에 위치한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당시에 세워진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다. 한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해서 ‘중앙탑(中央塔)’이라고도 부르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이 탑은 1916년에 토단(土壇)의 경사가 심하여 조선총독부에 의해 1917년 11월부터 1918년 1월까지 해체 수리가 이루어졌고, 해체 시 기단 하부와 6층 탑신부에서 각각 사리장치(舍利藏置)가 발견된 바 있다. 6층 탑신에서 발견된 사리장치는 당시 목제사리함(木製舍利函) 속에 은제사리호(銀製舍利壺)가 있었고, 주위로 목판을 넣어 종이로 봉하고 동경(銅鏡)은 목제사리함의 밑바닥과 위에 각기 놓여 있었다. 기단하부에서 발견된 사리장치는 청동제개부호(靑銅製蓋付壺)로서 편족 상단에서부터 파손되어 그 위 부분이 사리공 바닥에 떨어져 토사에 파묻혀 있었고 이로 인해 녹이 생겨 파손된 상태였다. 이 중 목제사리함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말하고 있으나 일제강점기 기록에는 기단부의 사리장치에 대한 언급이 없다. 기단부의 사리는 위치로 보아 건립 당시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통해 볼 때 기단부의 사리장치는 9세기 전반기의 것으로 보이며 고려시대에 이 탑에 대한 중수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평리 칠층석탑은 이중기단과 7층 탑신부,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높이는 18.6m이다. 탑의 기단부는 높은 탑신을 받치기 위해 넓게 비교적 넓게 조성되었다. 이중기단의 상·하층은 모두 12매로 구성되었으며 각 면마다 우주(隅柱)와 함께 3주(柱) 또는 4주의 탱주(撑柱)를 새겼다. 탱주의 수가 불규칙한 것은 1917년 또는 그 이전 보수 시 변형이 가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도 우주를 새겼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 끝에 반전을 주어 무겁게 보일 수 있는 탑에 활기를 주고 있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상륜부의 장식은 보통 하나의 노반(露盤) 위에 장식이 얹어지는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이중으로 포개어진 똑같은 모양의 노반 위로 복발(覆鉢)과 앙화(仰花)가 남아있다. 석탑의 총 부재 수는 134매이며 이 중 6매는 시멘트이다.
석탑의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삼국통일 초기와 7세기 후반·8세기 후반·8세기 말·9세기 전반기·후삼국 초기 등으로 다양하나, 이 탑이 ‘중앙탑’이라는 명칭으로 전승되어왔던 점과,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을 비롯한 사료(史料)에 ‘중원경(中原京)’이라는 지명 자체가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765) 이후부터 등장한다는 사실에 근거했을 때 9세기 전반으로 보인다.
이 탑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옛 가금면 지역의 중심지가 되는 곳으로, 주위에 산포하고 있는 유적에 의해 포위가 되어 있는 형국이다. 특히 탑평리 주변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수많은 평기와편과 막새기와가 출토되었고, 칠층석탑의 규모나 그 주변에 사지로 추정되는 면적으로 보았을 때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 경영되었을 것이라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발굴조사 결과 그간의 기대와는 달리 칠층석탑과 연관이 있는 유구는 발견할 수 없었다. 비록 일부지역에서 건물지의 흔적이 발견되기는 하였으나 이것을 석탑과 관련시킬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사찰과 관련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게 되었으며 비보탑(裨補塔)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This seven-story stone pagoda located in Tappyeong-ri, Jungangtap-myeon (former Gageum-myeon) in Chungju-si was built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76~935) and is known to be the largest Unified Silla stone pagoda remaining today. Also called Jungangtap (literally, “the central pagoda”) because it is located at the center of the Korean Peninsula, the pagoda consists of a main body of seven stories placed on a double-tier base.
Art historians have divergent views about when the pagoda was built, ranging from the early phase of Unified Silla (676~935) to the early tenth century. The most widely accepted view is that it was built in the early ninth century because the nickname of the pagoda, Jungangtap, has been used since that period, while the name Jungwongyeong (“the capital of the middle plain”), referring to the area of Chungju, began to be used after the reign of King Gyeongdeok (r. 742~765) in ancient texts such as Samguk sagi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문화재 상세정보

국보 6, 중앙탑, 중원탑평리칠층석탑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종교신앙 > 불교 > 예배 > 탑
통일신라
충주시
1962-12-20
-
건조물>석조건축물류/석탑
-
석재
방형
상륜부/탑신부(7층)/기단부(이중기단)
14.5m
1기
942.0
대표 소재지 공개
27447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중앙탑길 112-9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53-1
대표 보관장소 공개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11

소유 관리 점유 정보

참고 문헌

충주공업전문대학박물관, 1992, 『중원경과 중앙탑』, 수서원.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한국교원대박물관, 1994, 『93중원 탑평리유적 발굴조사보고서』.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현석건축사사무소, 2004, 『중원탑평리 칠층석탑 실측조사』.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2013, 『충주 탑평리유적(중원경 추정지) 발굴조사보고서』.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워프코, 2013,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정밀실측』.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2019,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주변부지 내 유적(17번지 일원) 발굴조사 보고서』, 부운디자인.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