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법주사 석련지는 돌로 만든 작은 연못으로, 법주사 경내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석련지는 전체적인 형태가 잘남아있으며 일부 파손된 부분은 보수·복원되었다. 법주사 석련지는 활짝 핀 연꽃 형태를 하고 있다. 사각의 지대석 위에 팔각의 받침석이 있고 그 위에는 3단의 괴임석이 층단을 이루며 모각되었다. 팔각 받침석 전면에는 안상을 새겼는데, 안상 내부에 문양은 따로 조각하지 않았다. 받침석 위에는 구름이 말려서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형태를 한 간주석이 있어 그 위의 연꽃이 천상에서 피어난 것임을 말해준다. 연꽃은 겹꽃으로 표현되었는데, 가장 밑의 연판의 내부에는 아무런 문양이 없지만 가운데 커다랗고 풍성한 연판 내부에는 고사리처럼 끝이 말린 줄기와 꽃술, 그리고 보상화(寶相華)가 도안화된 문양을 화려하게 새겼다. 만개한 연꽃 위에는 난간을 둘렀는데 천인상과 화문을 번갈아가며 표현하였다. 석련지는 원래 법주사의 중심불전이던 용화보전(龍華寶殿) 앞에 희견보살상, 사천왕이 새겨진 석등과 함께 나란히 축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배치는 미륵을 주존으로 신앙하던 법주사에서 주존불상과 연계된 특수한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관련 문헌자료나 비교자료가 전무하여 더 이상의 추론은 어렵다. 석련지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석조물은 극락세계의 연못, 즉 연지(蓮池)를 표현한 것으로 내부에 물을 담아두고 연꽃을 띄워 부처에게 공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배수시설이 없어 수조처럼 물을 갈기가 용이하지 않았을 것이며, 따라서 실제 연지로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석련지는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석조물로, 아직 그 용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체적인 형태와 비례, 정교한 문양의 표현이나 조각수법을 통해 볼 때 통일신라시대 전성기 불교미술의 양식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연판의 내부에 도안화된 보상화문이나 둥글게 말린 구름 형태를 띠고 있는 간주석은 863년경 조성된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 대좌에 나타나는 문양과 비교되지만, 그 보다 더 입체감이 두드러진다. 이런 양식적인 특징을 볼 때 이 석련지는 경내의 쌍사자 석등이나 사천왕상이 새겨진 석등과 함께 법주사가 중창된 776년(혜공왕 12)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While little is known about the use of this stone lotus basin located in the southwestern part of the precincts of Beopjusa Temple in Boeun, it is regarded as a unique and highly valuable part of the Korean Buddhist heritage as no similar item remains today. The vessel’s unique shape, along with the elaborately carved decorations on its surface, its outstanding symmetry and refined carving technique make it a great example of Korean Buddhist art which reached its zenith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76-935). The stylistic details of the lotus basin suggest that it was made together with the two stone lanterns, i.e. the one with the twin-lion stem and the other with the Four Heavenly Kings, in 776 (the 12th year of the reign of King Hyegongwang) when Beopjusa Temple underwent a major renov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