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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Archives of Chungbuk Cultural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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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
국가지정 > 보물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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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忠州 淨土寺址 法鏡大師塔碑
영문명 Stele for Buddhist Monk Beopgyeong at Jeongtosa Temple Site, Chungju
지정일 1963-01-21
관할시군 충주시
이칭/별칭 보물 17

문화재 설명정보

충북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정토사지에 있는 법경대사(879~941)의 탑비이다. 이 탑비의 주인공인 법경대사는 속명이 현휘(玄暉)이며, 본관은 남원 이씨이다. 그는 신라 879년(헌강왕 5)에 남원에서 6두품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영각산사(靈覺山寺)의 심광(深光)에게서 불법을 배운 뒤 무염(無染)의 문하에서 선(禪)을 수학했다. 898년(효공왕 2)에 해인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후, 906년(효공왕 10)에 당(唐)으로 건너가 도건(道乾)에게 선을 수학하고 고려 924년(태조 7)에 귀국했다고 한다. 법경대사가 귀국하자 태조는 특사를 파견하여 영접하고 국사로 예우하였으며, 정토사에 주석하게 했다고 한다. 법경대사는 정토사에 주숙하면서 유권열(劉權說)과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충주 유씨 가문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등 호족세력을 태조의 지지세력으로 회유하는 정치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의 문하에서 홍림(弘琳), 대덕(大德)을 비롯하여 법예(法譽), 대통(大統) 등 300여 명의 제자가 배출되는 등 당시 불교계를 주도하는 세력을 형성하였다. 63세의 나이로 입적하자 태조는 ‘법경(法鏡)’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자등(慈燈)’이라는 탑명을 내렸다고 한다. 비문은 당대의 최고의 문장가 최언위(崔彦撝)가 지었으며, 글씨도 유명한 서예가인 구족달(具足達)이 썼다.
원래 이 탑비가 있던 정토사지는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되었기 때문에 1983년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사찰의 규모 및 내역을 확인한 뒤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법경대사탑비는 귀부와 이수, 그리고 비신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다. 비신을 받치고 있는 귀부는 거북이의 몸인데 머리는 용에 가깝다. 즉 육각형의 귀갑으로 덮힌 등과 짧은 다리, 뭉툭한 발가락의 표현은 거북이지만, 부릅뜨고 있는 커다란 눈, 돼지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커다란 입과 입가에 표현된 수염을 통해서 용을 형상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수의 밑면에는 연꽃을 조각하였고, 네 귀퉁이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를 조각하였다. 이수 앞면의 중심부에는 편액을 만들고 그 내부에 ‘법경대사’라는 시호를 해서체로 새겼다. 편액의 좌우에는 두 마리의 용이 입을 벌리고 있는데 편액 위에 화염에 쌓인 여의주를 두고 서로 다투는 형상이다. 오석(烏石)으로 만들어진 비신에는 바둑판처럼 선을 긋고 그 속에 글자를 새겼다. 비신 앞면에는 3,200여자, 뒷면에는 300여자의 글자가 쓰여 있는데, 전체적으로 양호한 상태이지만 한국전쟁 때 생긴 탄흔이 군데군데 있어 40여 군데 탈락된 부분이 있다. 비신의 실측치는 높이 230㎝, 너비 110㎝, 두께 78㎝이다.
This historical commemorative stele at the Jeongtosa Temple site in Hacheon-ri, Dongnyang-myeon, Chungju-si, Chungcheongbuk-do was erected to honor a Goryeo monk named Byeopgyeong (879~941). The stele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from Jeongtosa Temple as the site was due to be submerged by the construction of a dam. A rescue excavation was conducted in 1983 to obtain the measurements of the temple and other details.
The stele consists of a tortoise pedestal, a hornless dragon capstone and a main body, all of which are well preserved except for about forty bullet marks left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It is engraved with two inscriptions, one on the front of the stele composed of about 3,200 characters and another on the rear consisting of about 300 characters.

문화재 상세정보

보물 17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종교신앙 > 불교 > 예배 > 탑
고려시대
충주시
1963-01-21
-
건조물>석조건축물류/비석
-
석재
비신: 장방형, 금석문(구양순체, 해서체), 전면3200자, 후면 300여자
이수, 비신, 귀부
비신높이3.15m, 비신폭1.42m
1기
2,462.0
대표 소재지 공개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177-1
대표 보관장소 공개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177-1

소유 관리 점유 정보

참고 문헌

불교중앙박물관, 2019, 『금석문 탁본 조사 보고서 강원도Ⅱ 충청북도』, 도반미디어.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