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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Archives of Chungbuk Cultural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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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영국사 원각국사비
국가지정 > 보물 영동 영국사 원각국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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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永同 寧國寺 圓覺國師碑
영문명 Stele for State Preceptor Wongak at Yeongguksa Temple in Yeongdong
지정일/등록일 1971-07-07
관할시군 영동군
이칭/별칭 보물 534

문화재 설명정보

영동 영국사 원각국사비는 고려 명종 초기 왕사(王師)였다가 사후 국사(國師)로 추증된 원각국사(圓覺國師) 덕소(德素)의 비로, 영국사 대웅전 남쪽 약 150m 지점의 낮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원각국사 덕소는 천태종으로 출가하여 국사에 오른 첫 승려로, 수많은 고승들을 배출한 천태종의 중흥조이다. 비석은 원각국사가 1174년 입적한 이후 그의 문도들에 의해 1180년 건립되었다.
비석은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통식적인 형태로 귀부(龜趺), 비신(碑身), 이수(螭首)를 모두 갖추고 있으나, 이수에 비해 현저히 작은 비신 때문에 안전성에 문제가 있어 이수는 결구되지 않고 바닥에 내려져 있다. 비석의 크기는 전체 높이 315.5㎝, 귀부 높이 101㎝, 비신 높이 163.5㎝, 이수 높이 64㎝, 비신 폭 107.5㎝, 비신 두께 6~13.5㎝이며 우측 하단부와 상단부의 모서리가 일부 파손되었고, 현대에 건립한 비각 안에 세워져 있다.
4매의 장대석으로 구성된 지대석의 크기는 242×257㎝이고, 그 위에 하나의 돌로 조성한 귀부가 놓여 있다. 귀부 상면 중앙에 장방형의 비좌(碑座)가 시설되어 있고, 등에는 커다란 귀갑(龜甲)이 6각형으로 조각되어 있다. 귀부의 네 발은 동체에 비하여 매우 작은 편으로 낮게 조각되어 희미하고 퇴화된 느낌이다. 뒤쪽의 두 발이 비교적 형태가 잘 파악되는데 발가락은 4개이고 발톱은 날카롭다. 앞발의 하면에는 연꽃 문양이 조출되었다. 귀두(龜頭)는 주름 잡힌 목을 수직으로 치켜든 형상이고 두 눈과 코가 높게 돋을새김 되었다. 귀부 상면에 마련된 비좌 홈의 크기는 112×15㎝이고, 비좌의 상면에는 문양이 시문되지 않았다. 비좌의 4면에는 안상이 조식되었고 측면 좌우에는 당초문도 양각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귀부는 전형적인 고려식으로서 둔중한 느낌을 주고 있다.
비신은 점판암석으로 조성하였는데 귀부, 비좌의 홈, 이수에 비해 크기가 왜소하고 두께 또한 일정치 않은 점이 특징이다. 비신 상단을 凸자 형의 돌기를 마련하여 이수를 꽂도록 하였다. 하단도 유사한 형태로 조성하였을 것으로 여겨지나 현재는 하단 부분이 파손되어 비신부를 꽂고 시멘트로 보강하였으므로 형태와 비문의 일부를 파악하기 어렵다. 전·후면에 비문과 음기가 새겨졌는데 자경(字經)은 1.5~2.5㎝이다. 비신 가장자리에는 보상당초문(寶相唐草紋)을 음각하였다.
이수는 현재 귀부 좌측에 놓여 있는데 부분적으로 파손되었으나 형태는 거의 완전하다. 하면에는 1단의 각형 괴임을 각출하였고 주변에 단엽앙련(單葉仰蓮)이 돌려졌으며 측면에 구름 문양이 조식되었다. 이수의 전면 중앙에는 장방형의 전액(篆額)을 양각하여 3행6자로 “원각국사비명(圓覺國師碑銘)”이라 양각하였다. 이수 상부에는 좌우에 1쌍씩 모두 4마리의 용이 조각되고 정상에는 보주가 놓였었는데 현재 결실된 상태이다. 전면은 해서체로 음각하였으며 후면에는 원각(圓覺) 문도(門徒) 등의 음기(陰記)가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은 비문을 통해 1180년(명종 10)이라는 절대연대가 확인되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This stone memorial stele standing in the precincts of Yeongguksa Temple in Yeongdong was built to honor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State Preceptor Wongak (a.k.a. Deokso), who also served as a royal tutor at the court of King Myeongjong of Goryeo. Ordained as a monk of the Cheontae (Tiantai) sect of Goryeo Buddhism, Wongak directed the school to its heyday, contributing to the production of a multitude of eminent monks. The stele, erected by his followers in 1180, six years after his death, consists of a turtle pedestal laid on a base stone, with the comparatively small main body set on the middle part of the pedestal. The hornless dragon capstone is laid on the ground beside the stele rather than on its top. The inscription on the body gives the exact date of its construction, thus increasing its value as a source of knowledge .
高麗・明宗時代の王師で、死後に国師を追贈された円覚(ウォンガク)国師・徳素(トクソ)の石碑である。円覚(ウォンガク)国師は、天台宗に出家して国師にまでなった初の僧侶で、多くの高僧を輩出した天台宗の中興の祖である。石碑は、円覚(ウォンガク)国師が1174年に入寂した後、彼の門徒らによって1180年に建立された。地台石の上に亀趺が置かれ、亀趺の上面中央に比較的小柄な碑身が建てられている。螭首は組み立てられておらず、地面に置かれている。碑文から絶対年代が判明しており、学術的価値が非常に高い。

문화유산 상세정보

제 0534 호
보물 534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사회생활 > 기념 > 비
고려시대
영동군
1971-07-07
-
건조물>석조건축물류/비석
-
석재
비신: 장방형(일부파손), 금석문(해서체)
이수(X), 비신, 귀부
귀부높이120cm, 신높이164cm, 넓이 78cm, 두께 13cm
1기
592.8
대표 소재지 공개
29160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영국동길 225-35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1397
대표 보관장소 공개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산138-1(영국사)

소유 관리 점유 정보

참고 문헌

충북문화유산지킴이, 2014, 『충북문화재 모니터링 점검보고서 下』.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간향건축사사무소, 2018, 『영국사 원각국사비 정밀실측조사보고서』.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불교중앙박물관, 2019, 『금석문 탁본 조사 보고서 강원도Ⅱ 충청북도』, 도반미디어.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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