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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통 좌리공신교서
국가지정 > 보물 김길통 좌리공신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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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金吉通 佐理功臣敎書
영문명 Royal Certificate of Meritorious Subject Issued to Kim Gil-tong
지정일/등록일 1981-03-18
관할시군 청주시
이칭/별칭 보물 716, 순성좌리사등공신녹권, 純誠佐理四等功臣錄券

문화재 설명정보

김길통 좌리공신교서는 조선 성종이 왕위에 오른 뒤에 자기를 추대한 신료들인 공신에게 녹훈하고 내린 교서이다.
공신녹권(功臣錄券)은 공신도감(功臣都鑑)에서 왕명을 받아 각 공신에게 발급한 문서이다. 교서와 녹권은 명확히 구별되는 것으로 교서는 왕이 직접 내리는 문서이고 녹권은 왕명을 받들어 공신도감에서 발급하는 것이다. 이 문서는 왕이 직접 내린 것이므로 교서이다. 고려 초에는 녹권만을 주었으나 고려 말기 중흥공신(中興功臣)에게는 녹권과 공신교서를 주었다. 조선 초기에는 개국(開國)·정사(定社)·좌명(佐命) 3공신의 정공신(正功臣)에 한하여 교서와 녹권을 아울러 주었으며, 원종공신에게는 녹권만 주었다. 그러나 정란공신 이후의 정공신에게는 교서만을 주고 원종공신에게는 녹권만 주었다.
조선시대에는 1392년(태조 1)의 개국공신에서 1728년(영조 4)의 양무공신(揚武功臣)까지 모두 28회의 공신이 책록되었는데 이 좌리공신은 제8회에 해당된다. 좌리공신교서는 3등공신인 이숭원(李崇元)에게 사급된 것도 보물 제651호로 지정된 바 있다.
김길통(金吉通, 1408〜1473)의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숙경(叔經), 호는 월천(月川)이며, 효례(孝禮)의 아들이다. 1429년(세종 11) 생원이 되고, 1432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의영고부사부터 감찰, 병조좌랑, 이조정랑·장령·사예, 판종부시사, 첨지중추원사, 전주부윤, 대사헌, 예조·형조 참판, 동지중추부사 등 여러 내외직을 두루 지내고 호조판서에 올라, 1471년(성종 2) 좌리공신 4등으로 월천군(月川君)에 봉해졌다. 성품이 청백하여 항상 청빈하였고, 평생 동안 공도(公道)로써 관직생활을 지냈다. 저서로는 『월천집』이 있다. 시호는 문평(文平)이다. 아들은 청릉군(淸陵君) 김순명(金順命)이다.
이 교서는 단황색의 생견(生絹)에 쓴 두루마리로서 우측 상단부위가 훼손되어 글자 일부가 보이지 않지만 보존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다. 54항에 걸쳐 주사란(朱紗欄)을 긋고 김길통의 공적 및 그와 그의 부모, 처자에게 주는 상전(賞典)을 기록하고, 뒤에는 1등에서 4등까지 75인의 공신명단을 적고 있다. 끝부분 연월일 위에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이 찍혀있다.
교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공신의 영정을 그리고, 비를 세우고 공적을 기록하며, 부모와 처자식에게 각각 1계(階)를 더하라 명하고 있다. 또한 자손은 정안(政案)에 ‘좌리사등공신 길통지후(佐理四等功臣 吉通之後)’라 기록하고 적장자는 세습하며 녹을 잃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 그 후손은 비록 죄를 짓더라도 용서하고 반당 4인, 노비 2구, 구사 2명, 밭 10결, 표리 1단, 녹마(鹿馬) 1필을 내려주며, 자식이 없으면, 생질(甥姪) 여서(女壻)에게 1계(階)를 더해주었다.
공신의 명단을 보면, 1등 신숙주(申叔舟), 한명회(韓明會) 등 9인, 2등 이정(李婷) 이침(李琛) 정인지(鄭麟趾) 등 12인, 3등 성봉조(成奉祖)에서 이숭원(李崇元)까지 18인, 4등 김수온(金守溫)부터 신준(申浚)까지 36명으로 모두 75명인데, 김길통은 4등에 속한다. 처음에는 74인이었으나, 그 뒤 구치관(具致寬)이 2등에 추록되어 모두 75인으로 늘어났다.
이 교서에 기록된 인물들을 통해 성종 대의 정치세력의 일면을 파악할 수가 있다. 좌리공신 중 신숙주·한명회·정인지 등은 세조집권 이래로 책봉한 정란공신, 좌익공신, 적개공신, 익대공신에 세 차례 참여하였고, 이 외 39인 또한 한번 이상 여기에 참여하였던 인물들이었다. 또한 신숙주와 두 아들, 이극돈의 3형제, 한명회 부자, 정인지와 두 아들 등 매우 가까운 인척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동시에 공신에 책봉된 경우가 28인에 달하였다. 따라서 좌리공신의 책봉은 훈신들의 정치적 지위만을 더욱 높여주었고, 후에 단지 훈구파의 권익만을 옹호하기 위한 공신책봉이라 하여 이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일어났다. 당시 언관(言官)으로 있던 김수손·김수령·손순효 등이 태평치세에 아무런 명분 없이 책봉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결국 좌리공신은 소수의 훈신들만이 참여함으로써 관료들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The Royal Certificate of Meritorious Subject Issued to Kim Gil-tong was issued by King Seongjong (r. 1469~1494) of the Joseon Dynasty. Upon ascending to the throne, King Seongjong selected meritorious subjects and recorded their contributions. The certificate is written on a yellow, raw-silk scroll. The top right part of the scroll is damaged and several letters are blurred, but overall it is in good condition. The 54 clauses, each recording Kim Gil-tong’s accomplishments and rewards offered to his parents, wife and children, are framed in red lines, followed by the list of 75 meritorious subjects who rank from the first to fourth rank. At the bottom, the issue date is stamped with the seal of the Joseon king. The records are valuable as they offer a glimpse into political power during the reign of King Seongjong.
金吉通(キム・ギルトン)佐理功臣教書は、成宗が王位に就いた後、自分を推戴した臣僚である功臣たちの勲功を記録し、彼らに下した教書である。この教書は、淡黄色の生絹に書いた巻物で、右側の上部が損傷しており一部の文字が判読できないが、保存状態は概ね良好である。54項にわたって赤絲欄を設け、金吉通(キム・ギルトン)の功績や彼と彼の両親、妻子に与える賞典を記録しており、後半には1等から4等までの75人の功臣の名簿が収められている。末尾の年月日の上に“朝鮮国王之印”が押印されている。このような記録は、成宗時代の政治勢力の一面を知ることができる資料として重要な価値を有している。

문화유산 상세정보

제 0716 호
보물 716, 순성좌리사등공신녹권, 純誠佐理四等功臣錄券
기록유산 > 문서류 > 국왕문서 > 교령류
사회생활 > 사회제도 > 문서 > 관(공)문서
조선시대
청주시
1981-03-18
-
전적·서적·문서>문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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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
권자장
-
31.4cm(세로)
1축
-
대표 소재지 공개
2864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충대로 1(개신동)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개신동 12
대표 보관장소 공개
2864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충대로 1(충북대학교박물관)/(개신동)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개신동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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