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충북 문화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우리의 기억이 100년 뒤 문화유산이 됩니다.

Digital Archives of Chungbuk Cultural Heritage

문화유산 검색
최석정 초상 및 함
국가지정 > 보물 최석정 초상 및 함
문화유산 검색
한자명 崔錫鼎 肖像 및 函
영문명 Portrait of Choi Seok-jeong with Case
지정일/등록일 2017-05-08
관할시군 청주시
이칭/별칭 보물 1936

문화재 설명정보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명곡 최석정(明谷 崔錫鼎, 1646~1715)의 초상과 초상을 보관하는 함이다.
최석정은 병자호란 때 주화론(主和論)을 주장한 최명길(崔鳴吉, 1586~1647)의 손자이며 윤증(尹拯, 1629~1714), 남구만(南九萬, 1629~1711) 등과 함께 소론의 영수로서 정계와 사상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671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한 후 승문원(承文院)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이조참판, 한성부판윤, 이조판서 등을 거쳐 1701년 영의정에 임명되었고 이후 영의정을 여덟 번 역임하면서 숙종년간(1674~1720)에 정치의 중심에서 활동하였다.
최석정은 노론과 소론, 남인의 정치적, 사상적 대립이 치열하게 전개된 당쟁의 시기에 비교적 온건하고 합리적인 정치 노선을 추구하여 국가의 중요 정책을 입안하고 현안을 해결하는 행정관료로 큰 역할을 하였다. 최석정은 양명학(陽明學), 주역(周易), 예학(禮學), 산수(算數), 자학(字學) 등 다양한 학문에 관심을 가졌으며 역학과 수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형이상학적인 역학사상에 의거한 수론을 전개한 『구수략(九數略)』을 저술하였다. 최석정은 첨단공정에 사용되는 조합수학(9차 직교라틴방진)을 스위스 수학자 오일러보다도 60년 앞서 발견해 내기도 하였다.
초상은 오사모에 흉배가 부착된 운보문(雲寶紋)의 단령을 입고 두 손을 소매 속에 맞잡아 교의에 앉은 관복 전신교의좌상이며, 매우 화려한 쌍학흉배(雙鶴胸背)에 정1품의 관료만이 맬 수 있는 서대(犀帶, 무소의 뿔로 장식한 띠)를 착용하였다. 교의에는 표범가죽이 깔리고 족좌대 위에 흑피혜(黑皮鞋)를 신은 두 발을 올렸다.
얼굴은 갈색 필선으로 윤곽선과 이목구비를 묘사하고 눈 아래, 법령, 왼쪽 뺨에 미묘한 선염을 구사하여 자연스럽게 입체감을 표현하였다. 수염은 흰색과 검은색의 필선으로 한 올 한 올 그려 넣었다. 굵은 필선으로 음영처리 없이 옷 주름을 표현하였고 단령의 벌어진 곳으로 보이는 안감의 모란문과 운문 역시 매우 세밀하게 묘사하였다.
교의 위에는 표범가죽이 깔려있는데 섬세한 필치로 털을 묘사하였고 표범의 머리가 단령 아래 발 사이에 보인다. 족좌대 옆에는 발톱이 강조된 표범의 두 발이 그려졌다. 교의의 다리는 3개가 그려졌고 다리 끝에는 은으로 만든 금속장식이 부착되었다. 바닥에 화문석은 없고 족좌대 위에만 청색 테두리가 있는 민돗자리가 깔려있으며 돗자리의 꼬임을 갈색 선으로 묘사하고 신발의 바닥 무늬도 분명하게 그려 넣었다.
단령에 오사모를 쓰고 교의에 앉은 전신교의좌상은 조선 후기 관복초상화의 전형적인 도상이며 단령, 사모, 교의, 족좌대 등의 표현이 모두 18세기 초에 제작된 초상화의 양식을 보인다. 정확한 제작 시기와 화가는 알 수 없지만 최석정의 사망한 18세기 초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최석정 초상은 17세기의 공신초상에서 18세기의 관복초상화로 변화하는 시기의 양상을 보여주며 뛰어난 사실성과 함께 섬세하고 숙련된 묘사가 돋보이는 중요한 작품이다. 초상을 보관하는 함도 초상화와 같은 시기에 함께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These relics are the portrait of Choi Seok-jeong (a.k.a. Myeonggok, 1646-1715), a Neo-Confucian scholar-official of the late Joseon period, and its storage box. A grandson of Choe Myeong-gil (1586-1647), a leader of the officials who sought a peaceful settlement with, rather than armed struggle against, the Manchu forces when they invaded Joseon in 1636, Choi Seok-jeong joined Yun Jeung (1629-1714) and Nam Gu-man (1629-1711) to advocate the political views of the Soron (“Young Doctrine”), exerting a strong influence on the political scene and academic circles of his time. In the portrait, he is depicted seated on a chair wearing dallyeong (a round-collared robe) and osamo (a black satin hat), making it a typical portrait of a government official dating from the late Joseon period. The details of the court uniform, chair and footrest suggest that the portrait was painted in the early eighteenth century.

문화유산 상세정보

제 1936 호
보물 1936
유물 > 일반회화 > 인물화 > 초상화
유물 > 생활공예 > 목공예 > 가구류
문화예술 > 서화 > 회화 > 일반회화
주생활 > 생활용품/가전 > 가구 > 함
조선시대
청주시
2017-05-08
-
회화·조각>초상화
-
섬유
족자
-
초상(173.0×90.0㎝), 함(111.0×18.0×17.5㎝)
초상 1폭, 함 1점
-
대표 소재지 공개
28313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로 143(명암동)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87
대표 보관장소 공개
28313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로 143(국립청주박물관)/(명암동) (명암동)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87

소유 관리 점유 정보

참고 문헌

동영상

  • 자료가 없습니다.

음원

  • 자료가 없습니다.

문서

  • 자료가 없습니다.

도면

  • 자료가 없습니다.

3D

  • 자료가 없습니다.

원시자료

  • 자료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