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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Archives of Chungbuk Cultural Heritage

문화유산 검색
충주 루암리 고분군
국가지정 > 사적 충주 루암리 고분군
문화유산 검색
한자명 忠州 樓岩里 古墳群
영문명 Ancient Tombs in Nuam-ri, Chungju
지정일/등록일 2005-03-25
관할시군 충주시
이칭/별칭 사적 463, 중원 루암리 고분군, 충주 누암리 고분군

문화재 설명정보

충주 누암리 고분군은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누암리 일대에 위치한 6세기 중엽이후에 조성된 대규모 신라고분군이다.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충주시에서 서북으로 약 5㎞에 있는 한강의 서안 구릉지대이다. 예부터 고려장터라 부르는 양지바른 남향의 낮은 구릉의 능선 끝부분에 위치한다.
이곳 누암리에서 실시된 정밀지표조사 결과 약 230여기의 고분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발굴된 고분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는 모두 5차례 이루어졌다. 1989년과 1990년에는 충북대학교박물관과 국립문화재연구소 팀에 의해서 각각 6기, 7기의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을 포함한 고분이 발굴되었다. 1991년에는 충북대학교박물관에 의해 26기의 고분, 2008년과 2010년에는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팀이 각각 4기, 6기의 고분을 발굴하여 모두 49기를 확인하였다. 이들은 굴식돌방무덤 27기, 앞트기식 돌방무덤[橫口式石室墳] 2기, 돌덧널무덤[石槨墓] 6기이며, 고려와 조선시대의 묘가 각각 7기씩이 확인되었다.
발굴된 고분 중 대표적인 것은 1호분과 45호분이다. 1호분은 누암리 지역에 처음 조사된 고분으로, 비록 도굴은 되었지만 그 크기가 지름 18m, 둘레 60m, 높이 5m의 대형분이다. 45호분은 현실(玄室)이 천정까지 완벽하게 남아 있어 주목되었다. 천정은 궁륭형(穹窿形, 한 가운데는 높고 사방四方 둘레는 차차 낮은 하늘 형상)으로, 석실바닥 1m정도 지점에서 시작하여 약 50~53°기울기로 급격히 천정의 중심으로 모여진 형태이다. 석실의 정중앙은 대형의 판석을 깔아 마무리 하였다.
이 유적의 굴식돌방은 경사진 지반을 ㄴ자로 깎아서 무덤구덩이[墓壙]를 만들고 축조한 반지상식 고분이다. 평면 형태는 방형에 가까운 긴네모꼴[長方形]이고, 널길[羨道]은 남벽의 좌측, 우측, 중앙에 낸 것으로 나누어지는데, 좌측에 낸 것이 가장 많았다. 널방[玄室]은 대부분 깬돌[割石]을 이용하여 네 벽을 내경시키면서 궁륭형으로 좁혀 천정의 마무리는 쐐기돌을 꽂은 형태로 추정되나 대형판석으로 마무리 한 것도 확인된다. 널방 내부에는 납작한 깬돌을 장방형으로 깔거나 쌓아서 주검받침[屍床臺]을 만들었다. 널방에는 1대의 주검받침만 둔 것도 있었으나 2대 또는 3대의 주검받침대를 갖춘 것도 있었다. 주검받침 위에는 베개로 사용된 석재들이 발견되어 피장자의 머리방향이 동쪽임을 알 수 있다. 그 위에는 대부분 시신을 안치하는데 널못[棺釘]이 발견되어 나무널[木棺]이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앞트기식 돌덧널은 평면형태가 장방형이고 굴식돌방보다는 규모가 작았다. 돌덧널은 장축을 등고선의 방향과 나란하게 두었고, 입구를 서쪽으로 두었다. 입구의 아래는 돌덧널과 같이 쌓고 나머지 위를 입구로 사용한 특징이 있다. 돌덧널의 바닥에는 전면에 걸쳐 납작한 깬돌을 깔았고, 단장(單葬)으로 추정된다.
누암리 고분군에서는 짧은 굽다리접시·바리[鉢]·합(盒)·항아리 등의 후기신라양식 토기류와 쇠손칼[鐵刀子]·덩이쇠[鐵鋌] 등의 철기류, 청동제띠끝장식[靑銅製帶端金具]·금동제귀고리 등의 장신구류, 가락바퀴[紡錘車] 등의 토제품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유물로 보아 이 고분군은 진흥왕의 북변 개척후인 6세기 중엽 이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고분군을 축조한 집단은 신라에서 충주로 배치된 중앙 귀족들로 보인다. 실제로 진흥왕대 초, 충주에 신라의 소경(小京)이 설치될 때 이곳으로 6부 호민과 귀척자제(貴戚子弟)를 이주시켰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를 고려해 볼 때, 이 고분군의 주인공은 충주지역을 거점으로 한강유역을 통제하였던 신라에 귀속된 중요한 세력집단으로 볼 수 있다.
The Ancient Tombs in Nuam-ri, Jungangtap-myeon, Chungju-si, Chungcheongbuk-do consist of a large group of Silla tombs that were built in the mid-sixth century and thereafter.
The site has undergone five excavation surveys to date, unearthing relics which indicate that the tombs were built from mid-sixth century on, i.e. after the development of the northern border by King Jinheung of the Silla Dynasty.
忠州楼岩里古墳群は、忠清北道忠州市中央塔面楼岩里山41一帯に位置する、6世紀中頃以降に築造された大規模な新羅古墳群である。
古墳群に対する発掘調査は全部で5回行われており、出土した遺物から、この古墳群は真興王による北辺開拓後の6世紀中頃以降に築造されたと推定されている。

문화유산 상세정보

제 0463 호
사적 463, 중원 루암리 고분군, 충주 누암리 고분군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고분군
사회생활 > 의례생활
삼국시대
충주시
200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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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 고인돌, 옛무덤(군), 사당 등의 제사·장례에 관한 유적>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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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
56,305.0
대표 소재지 공개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누암리 산41
대표 보관장소 공개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누암리 산41

소유 관리 점유 정보

참고 문헌

문화재연구소, 1991, 『중원 누암리 고분군 발굴조사보고서』.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충북대학교박물관, 1992, 『중원 누암리 고분군 지표조사보고서』.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문화재연구소, 1992, 『중원 누암리 고분군 발굴조사보고서』.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충북대학교박물관, 1993, 『중원 누암리 고분군』.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중원문화재연구원, 2009, 『충주 창동리 루암리 유적』.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2012, 『충주 누암리고분군 2차 시발굴조사보고서』.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충북문화유산지킴이, 2014, 『충북문화재 모니터링 점검보고서 上』.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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