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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Archives of Chungbuk Cultural Heritage

문화유산 검색
단양 사인암
국가지정 > 명승 단양 사인암
문화유산 검색
한자명 丹陽 舍人巖
영문명 Sainam Rock, Danyang
지정일/등록일 2008-09-09
관할시군 단양군
이칭/별칭 명승 47

문화재 설명정보

단양 사인암은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사인암리의 남조천에 접해 있는 50m 높이의 기암 절벽이다.
사인암이라는 명칭은 고려 때 유학자인 우탁(禹倬, 1263∼1342)의 행적 때문에 지어진 것으로 구전된다. 단양이 본관인 우탁은 임금을 보필하는 직책인 '사인(정4품)'으로 있을 당시 잠시 낙향해 이곳에 머물렀는데, 이후 조선 성종 때의 단양군수 임재광이 우탁을 기리기 위해 사인암으로 명명한 것으로 구전된다.
우탁과 관련하여 당시 충선왕이 숙창원비(淑昌院妃)를 간음하자 흰 옷 차림에 도끼를 들고 거적자리를 멘 채 대궐로 나아가 “경들은 가까이 모시는 신하이면서도 주상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고 이렇게까지 추악한 일을 저지르게 했으니 경들은 그 죄를 아는가(卿爲近臣 未能格非而逢惡至此 卿知其罪耶)”라고 극간하는 모습이 『고려사(高麗史)』 열전에 기록되어 있다. 우탁의 이 같은 간언은 충의(忠義)의 도리를 보여준 것으로 조선시대 문인들의 사표(師表)가 되었다.
사인암은 조선 후기의 『여지도서(與地圖書)』에도 “사인암이 군의 남쪽 15리에 있다. 계곡을 굽어보며 겹겹이 쌓인 절벽의 높이는 48∼49길이고 둘레는 15∼16아름이다”라고 그 경관을 기록하였다. 또한 조선시대 화원이었던 김홍도(金弘道, 1745∼?)를 비롯해 김윤겸(金允謙, 1711∼1775), 이방운(李昉運, 1761∼?) 등 많은 시인묵객들이 사인암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남기거나 글씨를 새겼다.
사인암을 소재로 한시를 지은 인물과 그들이 남긴 문집으로는 박제가(朴齊家)의 『정유각집』, 임수간(任守幹)의 『돈와유고』, 정범조(丁範祖)의 『해좌선생문집』, 정종로(鄭宗魯)의 『입재선생문집』, 조두순(趙斗淳)의 『심안유고』, 조수삼(趙秀三)의 『추재집』, 조재호(趙載浩)의 『손재집』, 최석항(崔錫恒)의 『손와선생유고』, 홍석주(洪錫周)의 『연천집』 등이 있다.
사인암은 단양 8경의 하나로, 기암 아래 남조천에 소(沼)가 형성되면서 빼어난 경관성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이윤영(李胤永, 1714∼1759)의 ‘독립불구 둔세무민(獨立不懼 遁世無憫)’과 같은 전통시대 문인들의 글귀가 암벽 곳곳에 각자되어 있는 등 인문학적인 가치도 매우 높다.
Sainam Rock is a unique 50m-high cliff located beside Namjocheon Stream in Sainam-ri, Daegang-myeon, Danyang-gun, Chungcheongbuk-do. It is said that U Tak (1263~1342), a Confucian scholar and Goryeo government official with the rank of Sain (Grade-4), stayed here for a little while on his return home, which is why it was given the name “Sain.”

문화유산 상세정보

제 0047 호
명승 47
자연유산 > 명승 > 역사문화명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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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군
2008-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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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건물 또는 정원(庭苑) 및 중요한 전설지 등으로서 종교·교육·생활·위락 등과 관련된 경승지>전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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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
5,950.0
대표 소재지 공개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사인암리 산27
대표 보관장소 공개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사인암리 산27

소유 관리 점유 정보

참고 문헌

충북문화유산지킴이, 2014, 『충북문화재 모니터링 점검보고서 下』.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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