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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Archives of Chungbuk Cultural Heritage

문화유산 검색
낙화장
국가지정 > 국가무형유산 낙화장
문화유산 검색
한자명 烙畵匠
영문명
지정일/등록일 2019-01-07
관할시군 보은군
이칭/별칭 국무 136

문화재 설명정보

낙화장은 종이, 나무, 비단, 가죽 등의 표면을 인두로 지져서 그림이나 글씨 문양을 나타내는 기술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낙화는 전통회화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수묵화 화법과 유사하며 수묵화 농담과 발묵에 비교될 수 있는 낙화의 농담법은 인두의 면을 사용하여 빠르게 지지거나 천천히 지지거나 깊게 혹은 얕게 누르거나 하는 등의 손놀림에 의해 표현한다.
보은군 보은읍 대야리에 거주하는 김영조(金榮祚, 1950~ )는 전통낙화기술에 입문한 후 한지, 나무, 가죽 등 여러 재료를 이용한 전통낙화기법에 능통한 장인으로, 특히 종이에 그리는 낙화기술은 탁월한 기량을 보여준다.
김영조의 전승계보는 19세기 순조년간 활동했던 수산 박창규(遂山 朴昌珪, 1786~1855)로부터 박창규의 사촌동생인 송암 박복규(松庵 朴復珪, 1819~1859), 박복규의 아들인 죽파 박진호(竹坡 朴鎭灝, 1842~?)와 초산 박병수(1858~?), 이를 계승한 운포 백학기(雲浦 白鶴起, 1895~?), 설봉 최성수(雪峯 崔聖洙, 1920~1985)와 뒤이어 전통기법을 전수받은 전원 전창진(田園 田昌鎭, 1947~?)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김영조는 1972년 서울 종로3가에서 한국낙화연구소를 운영하던 전창진에게 처음 입문하였는데, 입문초기에는 사군자, 화조, 산수, 인물 등의 동양화를 먼저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이 소재들을 그대로 낙화로 그리거나 혹은 이를 응용하여 새로운 문양을 제작하며 낙화의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낙화가 전창진은 일제강점기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했던 백학기 선생에게 배웠던 최성수의 계보를 이은 인물이다. 이후 낙화연구소가 운영이 어려워서 폐쇄되었을 때도 김영조는 종로2가 건물에 사무실을 얻어 낙화를 연습하고 한편으로는 낙화를 제작 판매하였다.
1977년 대구 동화백화점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래 1979년 속리산에 청목화랑을 개원하여 지속적인 작품활동과 제자양성을 통해 전통낙화기법의 전승과 저변확대에 기여하였다. 2007년부터 전승공예대전에 낙화산수병풍을 출품한 것을 계기로 여타 전승공예대전 및 전통미술대전 등 공모전에 특선 및 장려상 등 수상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2009년부터 둘째 딸인 김유진이 입문하여 가업으로 전통낙화기술을 이어가고 있다.
낙화의 발생시기를 알수 있는 기록은 찾기 어려우나 낙화에 관한 기록이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오세창의 『근역서화징(槿域書畫澂)』 등의 문헌에 전하는데, 특히 오세창의 『근역서화징』에 안동장씨(1598년생)가 낙화에 능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중기에 낙화가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조선낙화의 중흥조에 해당하는 수산 박창규가 1837년 화화법(火畵法)을 창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이 시기 전후로 낙화의 기법이 체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낙화제작은 유지(油紙)와 먹지(墨紙)제작, 초본(草本)과 선초(線草)과정을 거쳐 작업에 임한다. 김영조는 얇고 투명도가 높은 선익지에 기름을 발라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말려 유지를 직접 제작하고, 완성된 유지에 유탄을 골고루 입혀 먹지를 완성한다. 그 다음 붓으로 한지에 초본을 그린 후 초본위에 유지를 대고 선초과정을 거친다. 그런 다음 평인두와 앵무부리인두를 사용하여 손놀림의 속도와 깊이를 조절하여 낙을 놓는 전 과정을 직접 담당하고 있다.
김영조는 한지와 목재를 바탕재료로 삼아 수묵화법, 농담법을 이용하여 섬세한 묘사력과 숙련된 낙화기술을 구사함으로써 완성도 높은 회화적 전통미를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와 같은 화화적(火畵的) 전통미는 여타 전통공예기술 가운데에도 한 때 전승의 맥이 단절될 위기에 있었으나 낙화장 김영조의 집념과 노력에 의해 현재까지 계승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The Korean word “nakhwajang” (pyrographer in English) refers to a skilled artist who creates drawings or decorations on such materials as paper, wood, silk and leather using a heated tool resembling a poker. The art of pyrography in Korea has developed on the basis of traditional ink wash painting and hence shares many of the same techniques - except that a pyrographer uses a metal implement (indu in Korean) heated in a fire rather than a brush and ink, and carefully controls its application to obtain the desired tones and shades. Artist Kim Yeong-jo of Daeya-ri, Boeun has been officially acknowledged as a master pyrographer by the provincial authority in recognition of his outstanding achievements in the field of traditional art and the preservation and development of traditional pyrographic techniques. His works created on paper are particularly highly regarded.

문화유산 상세정보

제 0136 호
2019-01-07
개인
국무 136
무형유산 > 전통기술
문화예술 > 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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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군

참고 문헌

국립민속박물관, 2012, 『충청북도무형문화재 제22호 충청도 앉은굿』.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