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정원태 고택은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이다. 이 집은 구한말 점점 사라져가던 한학의 부흥을 위해 평생을 몸 바친 계산 정원태(桂山 鄭元泰, 1913~1993)가 태어나서 살던 집으로, 구전에 의하면 19세기 초에 지어졌다고 한다. 제천 정원태 고택은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사랑채가 안마당을 둘러싸고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튼ㅁ자형 배치를 이루고 있다. 사랑채의 날개부분이 짧게 구성되어 있어 서쪽이 트여져 있다. 고택 주변으로는 안채를 중심으로 방형으로 담장이 둘러져 있으며, 사랑채 앞의 바깥마당은 담장 없이 외부로 개방되어 있다. 안채는 사랑채 서쪽에 있는 일각문으로 드나든다. 안채 서쪽 끝 부엌 상부에 툇마루 쪽으로 문이 있는 광이 있으며, 옆에 건넌방이 2칸 있고, 그 옆으로 대청 2칸과 대청에서 들어갈 수 있는 골방이 있다. 골방에서 꺾여 남쪽으로 2칸의 안방을 두고, 아래로 2칸의 부엌이 있다. 특이하게 부엌은 입구 칸과 아궁이 칸으로 분리되어 있다. 사랑채는 동쪽에 툇마루에서 들어가는 방을 하나 두었고 그 서쪽으로 2칸의 사랑방과 대청, 건넌방이 있으며, 건넌방 뒤로 꺾여 안채에서 사용하는 광이 있다. 대청에는 불발기[煙窓, 連窓: 가운데 광창을 달고 위아래는 벽지를 발라 빛을 차단하는 독특한 분합]삼분합 문을 달아 개방감을 극대화했는데 이는 안채의 폐쇄적인 구성과는 비교되는 부분이다. 당시에는 경제 사정으로 초가로 지었지만 내외 구분이 엄격한 안채와 사랑채의 배치방법이나, 초가에 비해 지나치게 튼실한 가구법 등을 볼 때 추후 기와집으로 고칠 것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가구 형식은 안채의 경우 3평주3량이고 사랑채는 1고주5량이며, 기법은 전체적으로 고졸(古拙)하게 처리해서 장식은 없지만 잘 짜여진 집으로 중부 내륙 지방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This is the house where Jeong Won-tae (1913~1993, pen-name: Gyesan) was born and raised. Jeong devoted himself to the study of Chinese classics, which were gradually losing their influence toward the end of the Korean Empire (1897~1910). This thatched-roof house is said to have been built in the early nineteenth century. As the anchae (women’s quarters) is clearly separate from the sarangchae (men’s quarters), and the overall structural pattern seems remarkably solid for a thatched-roof house, it is assumed that Jeong planned to convert it to a tiled-roof house once his financial situation improved. The house has a simple design with a well-knit structure and few embellishments, and displays the characteristic features of houses in the central inland area of Jo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