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해(李應獬, 1557~1624)는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인물이다. 2002년 강원도 원주시에 있던 묘를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선산으로 이장하면서 복식과 이불, 자리를 비롯한 치관류(治棺類)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현재 충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주요 유물은 단령(團領), 직령(直領), 철릭[帖裏], 도포(道袍), 창의(氅衣), 중치막[中赤莫], 방령포(方領袍), 방령의(方領衣), 두루마기, 과두(裹肚), 여자 저고리 등이다. 단령은 홑단령 2점과 겹단령 2점이 출토되었다. 겹단령은 단령과 직령을 시침실로 징거 고정시켰는데 안팎 모두 화문단(花紋緞)으로 만든 겹단령과 숙초(熟綃) 겉감에 화조보문단(花鳥寶紋緞)으로 만든 겹단령은 각각 상복(常服) 흑단령(黑團領)과 시복(時服) 홍단령(紅團領)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직령은 명주 홑직령 1점과 모시 홑직령 1점이 수습되었는데 의례복으로, 또는 단령의 받침옷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모시 직령의 겨드랑이 안쪽에는 무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끈장치가 확인된다. 철릭은 6점(겹철릭 2점, 홑철릭 4점)이 수습되었다. 홑철릭 4점 중 2점은 운문단이며 이 중 1점은 상·하의가 분리된 채로 수습되었다. 상의와 하의의 비율은 1:1.7에서 1:2 정도이다. 허리주름은 3∼4㎝로 넓은 편이었으며 6점 중 3점은 탈착형 소매가 달려 있었다. 그 중 운문단 철릭의 소매 수구 부분 끝에는 트임을 방지한 매듭단추가 달려 있다. 도포는 3점이 수습되었는데 앞자락의 옆선에 달린 뒷길 안쪽에 고정되어 두 층의 뒷자락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무의 겨드랑이 부분의 주름은 없어진 상태이다. 모두 겹으로 제작되었는데 무문릉(無紋綾)과 명주[紬] 등으로 만들었다. 창의는 2점이 수습되었는데 곧은 깃의 광수포로, 뒷중심선 아래로 긴 트임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뒷트임 시작부분에는 작은 삼각무를 달아 트임을 방지하였다. 중치막은 옆트임이 있는 광수포인데 착수(窄袖)에서 광수(廣袖)로 이행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6점 모두 겉감과 안감에 명주를 사용하였으며 솜을 두어 누볐다. 방령포 1점은 화려한 모란만초문단으로 제작되었으며 뒤가 트이고 좌우 소매가 탈착형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뒤트임에는 작은 삼각무가 달려 있다. 방령의는 2점 수습되었는데 앞뒤 길이가 같은 76㎝ 길이의 사양화보문단(四樣花寶紋緞) 방령의와 앞길이 97.5㎝에 뒷길이 75㎝인 전장후단형의 소화문단(小花紋緞) 방령의이다. 소화문단 방령의의 좌우 섶에는 잔주름을 잡은 것이 특징이다. 과두는 1점 출토되었고 길이 약 113.5㎝ 정도에 옆선에는 33㎝ 정도의 트임이 있는 솜누비로 제작되었다. 그 외에 명주로 만든 솜누비 두루마기와 과두가 각각 1점씩 수습되었다. 이 외에 여성용 아청색 솜저고리 1점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가족이 넣어 준 수례지의(襚禮之衣)로 짐작된다. 화문단 목판깃을 단 명주[紬] 저고리로, 겨드랑이의 소형 삼각무는 봉화문단로 장식하였다. 임진왜란 전후로 무관을 지낸 이응해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은 17세기 무관 복식을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일 뿐 아니라 임진왜란 전후의 복식 변천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전쟁으로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고급 직물을 사용한 의류들이 많이 수습되었으며 정성들인 구성법도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다.
General Yi Eung-hae (1547~1627) served as the military commander of Jeolla-do in 1613 (the 5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wanghaegun of Joseon). Upon the relocation of his tomb in 2002, a total of thirty-four relics including thirty items of ten types of clothing were collected and stored at the Chungju Museum. They include four dallyeong (official robe with a round collar), two jingnyeong (man’s coat with a straight collar), six cheollik (a military officer’s robe), three dopo (an outer coat), two changui (an everyday jacket worn by an official), six jungchimak (man’s overcoat with wide sleeves), a bangnyeongpo (an outer garment with a wide collar), two bangnyeongui (jacket with a wide collar), a durumagi (overcoat), a gwadu (a cloth used to wrap the head of a deceased person), and a woman’s jacket. They constitute an invaluable resource that sheds light on the changes in clothing styles around the time of the Imjin Waeran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