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이지당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중봉 조헌이 제자를 가르치던 서당이다. 옥천 이지당은 이곳의 지명을 따라 각신서당(覺新書堂)이라 하였으나 우암 송시열이 『시전(詩傳)』의 ‘고산앙지 경행행지(高山仰止 景行行止, 산이 높으면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에서 끝의 두 ‘지(止)’자를 따서 이지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 후 퇴락되었던 것을 1901년(광무 5)에 옥천읍 옥각리의 금(琴), 이(李), 조(趙), 안(安)씨 등 네 문중에서 재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지당은 정면 6칸, 측면 1칸의 규모의 목조기와집이다. 평면구성을 보면 몸채는 서쪽부터 2칸의 방, 3칸의 대청마루, 한 칸의 방을 두고 있다. 몸채를 중심으로 동쪽에 정면 1칸, 측면 2칸과 서쪽에 정면 1칸, 측면 3칸의 익랑이 있다. 서쪽 익랑은 2층 누각식으로 구성하여 변화 있고 율동감 있는 형식의 서당을 구성하고 있다. 동익랑은 동쪽에 계단을 두고 툇마루를 설치하였고, 서익랑은 북쪽으로 한 칸의 마루방을 두고 남쪽으로 2칸의 우물마루를 두었다. 마루방 아래에 몸채의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서쪽 익랑의 측면에는 2층 누각에 오르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구조는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있다. 몸채는 네모기둥을 사용하였고, 동익랑은 앞면에 굵은 두리기둥이며 서익랑은 전체적으로 두리기둥이다. 민도리집이지만 서익랑은 동·서쪽에는 초익공이 설치되어 있다. 가구형식은 3량가이고, 지붕은 몸채와 동익랑은 홑처마 맞배지붕이며 서익랑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옥천 이지당은 앞으로 금강 물줄기가 흐르며 배산의 협소한 지형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자리하고 있다. 건물은 ㄷ자형 평면에 서쪽 익랑을 2층 누각으로 꾸민 모습은 서당의 형식을 넘어서는 건축관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Ijidang School in Okcheon was the seodang (“Confucian village school”) where Jo Heon (a.k.a. Jungbong), a renowned Neo-Confucian scholar-official and righteous army commander, taught his pupils. The building is located in what is regarded as an auspicious site, with a tributary of the Geumgang River flowing in front of it and a mountain rising behind it. The building has two wings forming a “ㄷ”-shaped layout, of which the west wing features a two-story structure with a raised floor, displaying an architectural style rarely seen in other traditional village school build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