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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현 초상
시도지정 > 충북 유형문화유산 이제현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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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李齊賢 肖像
영문명 Portrait of Yi Je-hyeon
지정일/등록일 1980-11-13
관할시군 보은군
이칭/별칭 유형 72, 익재 영정, 益齋 影幀

문화재 설명정보

고려말의 문신이며 학자인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1287~1367)의 초상이다.
이제현은 뛰어난 유학자로 성리학의 수용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28세인 1314년에 원(元)의 수도인 대도(大都)에 있던 충선왕(忠宣王)의 부름을 받고 원에 가서 당대의 문장가 원명선(元明善, 1269~1322), 조맹부(趙孟頫, 1254~1322) 등 충선왕의 만권당(萬卷堂)에 출입하던 한족(漢族) 출신 문인들과 접촉하며 학문과 식견을 넓혔다. 고려의 25대 충선왕대부터 31대 공민왕대까지 요직에 있으면서 정치활동을 하였으며 관직은 공민왕대에 문하시중(門下侍中)까지 올랐다. 저서에 『효행록(孝行錄)』, 『익재집(益齋集)』, 『역옹패설(櫟翁稗說)』, 『익재난고(益齋亂藁)』 등이 있다. 이제현은 서화에도 능해 조맹부의 서체를 도입해 유행시켰으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기마도강도(騎馬渡江圖)》가 그의 작품으로 전한다.
이 작품은 당초 보은 이제현 영당(충청북도 기념물 제161호)에 봉안된 초상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인 국보 제110호 《이제현 초상》의 모사본을 이모한 것으로 여겨진다. 보은 이제현 영당은 이제현의 후손인 눌헌 이사균(訥軒 李思鈞, 1471~1536)이 1504년 부수찬(副修撰)으로 폐비 윤씨의 복위에 반대하다가 보은으로 부처(付處, 장소를 지정해 머물게 하는 형벌)되었을 때 건립하였다. 작품은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에 위탁·관리 중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은 초상화에 뛰어났던 원의 화가 진감여(陳鑑如)가 1319년에 그린 것이며 그림 위쪽에 초상화가 그려지고 21년이 지난 후에 쓴 이제현의 자찬(自撰)과 시, 당대의 문장가 탕병룡(湯炳龍)이 이제현의 뛰어난 인품과 학문을 찬양한 시가 있다. 이제현의 글은 그가 33살이 되던 1319년에 충선왕을 모시고 절강(浙江)에 갔을 때 왕이 항주(杭州) 출신 화가인 진감여를 불러 초상을 그리고 탕병룡에게 찬을 쓰게 했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이제현과 탕병룡의 글도 그대로 모사하였다.
초상은 심의(深衣)에 검은 색 건(巾)을 쓰고 공수자세로 의자에 앉은 우안팔분면(右顔八分面)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이며 비단에 채색을 사용해 그렸다. 얼굴의 윤곽선과 이목구비는 부드러운 갈색 필선으로 묘사하고 음영은 가하지 않았다. 수염, 눈썹, 머리카락은 가는 필선으로 섬세하게 한 올 한 올 묘사하였고 푸른색의 선이 둘러진 흰색의 심의는 당당한 풍채를 강조한다. 공수자세를 한 손의 오른쪽 엄지손가락 끝이 나와 있는 것은 중국 초상화의 특징이다. 인물 왼쪽에 화려한 당초문이 자개로 촘촘하게 시문된 칠기 탁자가 있고 그 위에 『주역(周易)』, 청동정(靑銅鼎), 가야금이 놓여있다. 교의와 가로줄 무늬가 있는 족좌대는 화려하게 조각하고 붉은 색 칠을 하였고 교의 등받이에는 붉고 푸른 양면의 천을 덮고 의자의 팔걸이에 매듭을 늘어뜨렸다. 이처럼 초상화에 여러 물건이 놓인 탁자 등의 기물이 등장하는 것은 명·청대까지 계속된 중국초상화의 양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명의 화가가 그렸다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9호와 제179호로 지정된 《임경업 초상(林慶業 肖像)》에도 나타난다.
이 초상화는 중국화가가 그린 초상화의 인물은 물론 주위의 기물과 글씨까지 매우 충실하게 모사한 이모본으로, 제작 시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손상이 많은 원본의 세부묘사를 보충하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This portrait of Yi Je-hyeon (a.k.a. Ikjae, 1287-1367), a Neo-Confucian scholar-official of late Goryeo, was made to be enshrined at his portrait shrine (“Ikjae Yeongdang shrine”) in Boeun-gun. It presumed to have been copied from an original that has been designated as National Treasure No. 110 and is currently stored in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in Seoul. The shrine was established in 1504 by Yi Sa-gyun (1471-1536), a descendant of Yi Je-hyeon, when he was exiled to Boeun for his opposition to the restoration of the Deposed Queen Lady Yun (1445-1482). The painting is an extremely faithful reproduction of the original created by a Chinese painter, and every details of the figure and objects placed around the sitter as well as the inscriptions written by Yi Je-hyeon and a Chinese scholar have been meticulously copied. While there is little information about the date of this reproduction, it is highly regarded for the details that complement the partly damaged original portrait.

문화유산 상세정보

제 0072 호
유형 72, 익재 영정, 益齋 影幀
유물 > 일반회화 > 인물화 > 초상화
문화예술 > 서화 > 회화 > 일반회화
조선시대
보은군
198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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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조각>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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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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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165㎝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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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소재지 공개
28313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로 143(명암동)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87
안함
28313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로 143(국립청주박물관 수장고)/(명암동)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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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