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정사공신에 책록된 유백증(兪伯曾, 1587~1646)의 초상이다. 유백증의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자선(子先), 호는 취헌(翠軒)이다. 1623년 인조반정 때 공을 세워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으로 기평군(杞平君)에 봉해졌다. 유백증은 성품이 강직하여 직언을 아끼지 않아 화를 입기도 하였으나 굽히지 않았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는 동안 청(淸)과의 화의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하였다. 말년에 국가자강책(國家自强策)에 대하여 10조(條)를 들어 상소한 이후 사직하고 은거하였다. 이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경(忠景)이다. 이 초상은 95×174㎝의 크기로 비단에 채색되었다. 초상 속 유백증은 단령을 입고 채전(彩氈) 위 의자에 앉은 공신초상의 형식으로 묘사되었다. 수염이 짧고 주름이 없는 젊은 모습으로 보아 정사공신으로 녹훈될 당시인 30대 후반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이 초상은 모정의 중심선이 드러나는 사모표현과 모란이 두드러진 흉배표현, 공수한 손 가리개의 노출 및 녹색과 흑색으로 오른쪽으로 날카롭게 돌출된 두 겹의 무와 직선으로 떨어지는 옆트임의 형태 등 같은 정사공신으로 녹훈된 이시방(李時昉) 초상(보물 제1482호, 대전역사박물관 소장)과 유사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의자의 우측 손잡이 묘사가 생략된 것이 특징이다. 흉배는 당하관이 사용한 백한흉배로 두 마리의 백한을 모란과 구름이 둘러싼 형식으로 유백증이 정국공신으로 정5품 지평(持平)이었던 시점임을 알 수 있다. 특히 흉배 속 백한이 푸른 반점을 가진 두 가닥의 꼬리를 지니고, 여백에 크고 화려한 모란이 배치된 것은 17세기 후반 백한(白鷳) 흉배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화려한 흉배에 비해 단령은 비교적 소략하게 표현되었다. 옷주름은 짙은 먹으로 단순하게 처리하였고, 별다른 문양없이 옷 전체를 짙은 자주색으로 칠하여 평면적 느낌을 주고 있다. 얼굴은 도드라진 부분을 붉은 선염을 통해 강조하였다. 바닥에는 조선 중기 초상의 특징인 채전을 묘사하여 17세기 초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This portrait of Yu Baek-jeung (1587~1646), a civil official of mid Joseon, shares the same style as the portrait of Yi Si-bang (1594~1660) designated as Treasure No. 1482 and currently stored in the Daejeon History Museum. Both officials were granted the title of Jeongsa Gongsin (Meritorious Subject for Defender of the Dynasty) by King Injo (r. 1623~1649) for their distinguished services during the Rebellion of Yi Gwal in 1624. The similarities of their portraits are particularly apparent in the depiction of the official silk hat and robe emblazoned with a rank badge and sleeves covering hands, while the right armrest is not depicted in Yu’s portrait. The arrangement of sumptuous peonies on the rank badge and the floral carpet on the floor are characteristic elements of Korean portraits of the seventeenth centu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