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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Archives of Chungbuk Cultural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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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채운암 목조여래좌상
시도지정 > 충북 유형문화유산 괴산 채운암 목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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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槐山 彩雲庵 木造如來坐像
영문명 Wooden Seated Buddha of Chaeunam Hermitage, Goesan
지정일/등록일 1998-01-09
관할시군 괴산군
이칭/별칭 유형 191

문화재 설명정보

괴산 화양구곡의 제4곡인 금사담(金沙潭) 위에 위치하는 채운사 대웅전에 봉안된 목조불상이다.
채운사는 본래 화양구곡 제5곡인 첨성대(瞻星臺) 앞쪽 계곡에 있었다. 1277년(충렬왕 3)에 도일선사(道一禪師)가 창건하고 절 이름을 수도암(修道庵)이라 하였다가 1610년(광해군 2)에 혜식(慧識)스님이 중창하고 채운암이라 개칭하였다. 현 위치는 1653년(효종 4)에 혜일(慧日)스님이 환장암(煥章庵)을 창건하였던 곳이다.
환장암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화양동에 있다고 간단히 기록되었으나, 『화양지(華陽誌)』에는 1674년(현종 15)에 민정중(閔鼎重)이 중국에서 구해온 명나라 의종(毅宗)의 “비례부동(非禮不動)”이라는 글씨를 화양동 첨성대 아래에 모각한 뒤 수직사찰을 세우고 환장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환장(煥章)은 중국의 유명한 유림의 결성장소이며, 절 이름을 환장사라 한 것은 송시열의 뜻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1726년(영조 2)에 절 오른쪽 큰 바위에 명 태조의 어필인 “충효절의(忠孝節義)”와 신종(神宗)의 어필인 “용(龍)”자를 봉안한 전면 3칸 측면 2칸의 운한각(雲漢閣)을 지었으며 또 절 앞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2층 기와집의 공운루(供雲樓)를 세웠으나 1896년(고종 33)에 의병을 소탕한다고 왜병이 불을 질러 대웅전만 남기고 다 불탔다. 또한 환장암 앞의 도명산 골짜기에 있는 채운암이 1948년의 큰 홍수로 모두 파괴되자, 두 절을 합치기로 하고 그 재목을 옮겨 환장암의 요사채를 세우고 절 이름을 채운사라 통칭하였다.
채운사 목조여래좌상은 높이가 70㎝로서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 설법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머리는 곱슬머리 형태의 나발(螺髮)에 육계(肉髻)가 있고 이마에는 부처의 광명을 뜻하는 백호(白豪)가 있으며 눈은 반개하고 콧날은 오뚝하다. 입은 꼭 다물고 있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다. 법의는 통견(通肩)으로 두 어깨에 직선으로 걸쳐 가슴이 보이고 허리에 띠를 둘렀다.
전체적으로 정제된 조각기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불상의 조성연대를 밝혀주는 유물이 복장 속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조선 1723년(경종 3)에 만들었다는 기록을 통해 조선 후기 불상 연구의 기준이 될 수 있는 불상이다.
This wooden Buddha enshrined in Daeungjeon Hall of Chaeunam Hermitage in Goesan displays the dharmacakra mudra, or the gesture of turning the Wheel of Dharma while in meditation. The Buddha stands 70 centimeters tall and wears a robe that covers both shoulders and is tied with a waistband. A record on the votive offerings discovered in the statue’s depository shows that it was made in 1723.

문화유산 상세정보

제 0191 호
유형 191
유물 > 불교조각 > 목조 > 불상
종교신앙 > 불교 > 예배 > 불상
조선시대
괴산군
1998-01-09
-
회화·조각>목불(동산)
-
목재
좌상
-
78㎝
1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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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 관리 점유 정보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