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교이다. 1980년 대청댐 건설로 인한 수몰 때문에 문의초등학교 정문에서 남쪽으로 100m 전방에 위치하던 것을 문의면 미천리로 이전하였다. 2002년 3월 문의문화재단지로 다시 옮겼다. 문산리 석교에 대한 내용은 조선 헌종 초기에 편찬된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 처음 등장한다. 교각에 ‘을묘이월(乙卯二月)’이라는 각자가 남아 있다. 교각 상판은 2.5×0.3〜0.9m의 규모로 일정하지 않고 8매의 화강석과 2매의 청석(靑石) 등 총 10개로 이뤄져 있다. 상판 장대석은 남북으로 2매씩 연결하여 놓고, 동서로는 5매씩 연접하여 평교(平橋)를 만들었다. 석재는 거친 다듬을 하여 미적 감각은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이 돌다리는 장축의 상판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시렁교라고 할 수 있다. 시렁은 긴 나무막대를 걸쳐서 그 위에 물건을 얹어 놓은 선반 같은 장치를 의미한다. 하부 구조는 석주를 세우지 않고 통돌을 사용하여 교각의 역할을 대신하고, 멍에석을 가구하여 상부에 넓은 석판재를 덮어 마감하였다. 청주 문산리 돌다리는 비록 두 번의 이전이 있었으나 최소 조선시대 이전에 건설됐고. 충청북도에서 옥천 청석교, 진천 농교, 청주 남석교(南石橋) 등과 함께 몇 기 남아있지 않아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하다. 특히 청주 남석교보다 훨씬 고식(古式)의 기법을 사용했으면서 형태와 구조는 매우 안정되어 있다. 문산리 돌다리는 길지는 않지만 튼튼함과 균형성이 돋보이는 시렁형 평교로 선조들의 건축 지혜가 담겨져 있다.
The “shelf-style” stone bridge in Munsan-ri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in the Goryeo period (918~1392). A story about the bridge is included in Chungcheongdoeupji (Chronicle of Towns in Chungcheong-do) compiled during the reign of King Heonjong (r. 1834~1849). It is a stable solid structure, despite looking somewhat unrefined due to the use of roughly finished sto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