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인 수암 권상하(遂菴 權尙夏, 1641~1721)의 초상화이다. 권상하는 노론계 송시열(宋時烈, 1607~1689)과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의 학맥을 이은 제자이다.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 한수재(寒水齋)이며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1660년에 진사가 되었지만 관직에 나가지 않고 학문과 교육에 전념하였다. 이 초상이 봉안되었던 황강영당(黃江影堂, 충청북도 기념물 제18호)은 원래 권상하가 생시에 쓰던 서재인 한수재를 영당으로 개조한 것이다. 한수재는 권상하가 46세인 1686년에 낙성(落成)되었고 송시열은 직접 편액을 써주었다. 초상은 비단 바탕에 채색을 사용해 얼굴을 약간 오른쪽으로 향하고 바닥에 앉은 모습으로 그린 전신부좌상(全身趺坐像)이다. 화면 위에 “한수옹칠십구세진(寒水翁七十九歲眞)”이라는 제기가 있고 오른쪽 중간 부분에는 “기해사월일화사김진여모(己亥四月日畵師金振汝摹)”라는 관지(款識)가 있어 『한수재집(寒水齋集)』의 연보(年譜)에 수록된, 권상하가 79세인 기해년(1719)에 김진여(金振汝, 1675~1760)가 초상을 그렸다는 기록과 일치한다. 김진여는 18세기 전반에 활동한 화원화가이며 사대부의 초상을 많이 그린 화가이다. 커다란 화면에 보는 사람의 시선을 압도하는 느낌을 주는 초상화는 노학자의 당당한 풍모를 유감없이 드러낸 수작이다. 심의에 복건(幞巾: 머리에 쓰는 건의 하나로 뒷부분은 곡선이고 귀 윗부분에 좌우 2개씩의 주름을 잡고 주름 속으로 끈을 달아 뒤로 돌려 맨다)을 착용하고 가슴에는 흰색의 광다회(廣多繪: 의복에 두르는 폭이 넓고 납작한 모양의 허리띠)를 매었다. 얼굴의 이목구비는 부드러운 필선과 선염으로 묘사하였고 눈 주위와 입술 아래, 법령에 밝은 색을 더해 입체감을 표현함으로 얼굴의 특징과 주인공의 강직한 성격을 드러내었다. 검버섯, 콧잔등 위의 사마귀는 화가의 뛰어난 관찰력과 묘사력을 말해주며 두 손을 모으고 앉은 신체의 묘사는 안정적이고 적절한 비례감을 보여준다. 대담한 필선에 음영이 가해진 옷 주름과 하얀색의 안료로 섬세하게 그린 옷감의 문양은 독특한 질감과 입체감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며 안으로 말아 넣은 듯한 풍성한 옷자락의 끝은 굵고 검은 단과 함께 화가의 개성적인 표현기법으로 주목된다. 이 작품은 18세기에 유행한 한림학사풍(翰林學士風) 사대부초상의 대표적인 예이며 화가가 밝혀져 회화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This portrait depicts a late Joseon civil official named Gwon Sang-ha (pen-name: Suam, 1641~1721). The title written on the painting, as well as the artist’s inscription, show that the painting was produced by the artist Kim Jin-yeo (1675~1760) in 1719 when the sitter was 79 years old. With its painter clearly identified, the work is regarded as a valuable example of the portraits of members of Joseon’s Confucian elite produced during the eighteenth centu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