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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Archives of Chungbuk Cultural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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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진 초상
시도지정 > 충북 유형문화유산 한원진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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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韓元震 肖像
영문명 Portrait of Han Won-jin
지정일/등록일 2012-07-06
관할시군 제천시
이칭/별칭 유형 334

문화재 설명정보

조선 후기의 학자이며 수암 권상하(遂菴 權尙夏, 1641~1721)의 제자인 남당 한원진(南塘 韓元震, 1682~1751)의 초상화이다. 한원진의 본관은 청주, 자는 덕소(德昭)이고 결성(結城: 지금의 홍성)의 남당에 거주하며 지명을 호로 삼았다. 어려서부터 재주와 지혜가 뛰어났으며 21세 때 제천 황강의 권상하를 찾아가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25년 경연관(經筵官)에 임명되었으나 곧 관직을 버리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권상하의 문인 중 대표적인 여덟 명을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라고 하는데 한원진, 위암 이간(巍巖 李柬, 1677~1727), 병계 윤봉구(屛溪 尹鳳九, 1681~1767), 봉암 채지홍(鳳巖 蔡之洪, 1683~1741), 화암 이이근(華巖 李頤根, 1668~1730), 관봉 현상벽(冠峰 玄尙璧, ?~?), 매봉 최징후(梅峰 崔徵厚, ?~?), 추담 성만징(秋潭 成晩徵, 1659~1711)을 말한다. 이중 한원진은 이간과 함께 가장 뛰어난 제자로 송시열과 권상하의 학맥을 이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을 사용해 그린 반신상으로 그림 위쪽에 “남당한선생진상(南塘韓先生眞像)”이라는 제기가 있다. 한원진은 복건을 쓰고 가슴 아래에 세조대(細絛帶 : 여러 겹으로 합사한 명주실로 만든 띠)를 맨 심의를 입었으며 두 손을 맞잡은 공수자세로 그려졌다. 머리를 약간 숙인 구부정한 자세로 사대부의 일반적인 반신상에 비해 얼굴이 작고 신체가 비교적 크게 그려져 당당한 체구가 드러나며 눈을 지그시 내려뜨고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에서 사려 깊은 학자의 풍모가 부각된다.
얼굴은 배채(背彩 : 비단 뒤에서 채색을 가하여 앞쪽으로 배어나오게 하는 기법. 앞에서 칠하는 것보다 채색이 은은하고 물감이 쉽게 박락되지 않는 장점이 있다)한 후 살색 필선으로 이목구비를 표현하고 미간과 눈 주위, 법령과 양쪽 뺨에 약간의 선염을 가해 입체감을 나타내었다. 머리를 약간 숙인 탓에 두드러지는 굽은 코가 얼굴 모습의 특징을 강조하며, 굵기의 차이가 거의 없는 회색의 필선으로 단순하게 묘사한 옷 주름은 복건, 심의의 깃, 세조대의 검은 색과 대비를 이루며 강직한 문인의 성정을 그려내었다.
복건과 심의를 착용한 문인의 초상화는 조선 중기부터 그려지기 시작했으며 송시열의 초상화가 야복본(野服本)으로 그려지면서 17세기 중반 이후 크게 유행하였다. 이 작품은 누가 그렸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18세기 야복본 문인 초상화의 대표적인 예로 손꼽히며 19세기에 그려진 한원진 초상(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범본(範本)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This portrait of Han Won-jin (pen-name: Namdang, 1682~1751), a Confucian scholar of late Joseon, shows the sitter wearing the scholar’s head cloth and robe (simui). Portraits of Confucian scholar-officials dressed in this kind of attire enjoyed great popularity after the mid-seventeenth century. Although the painter is not identified, it is regarded as a classic example of the portraits of members of Joseon’s Confucian elite during the eighteenth century. The painting is also known to have served as the model for the portrait of Han Won-jin, currently stored in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produced during the nineteenth century.
朝鮮後期の学者である南塘・韓元震(ハン・ウォンジン、1682〜1751)の肖像画である。この肖像のように幅巾と深衣を着用した文人の肖像画は、朝鮮中期から描かれ始め、17世紀半ば以降に大いに流行した。この作品が誰によって描かれたのかは不明であるが、18世紀の文人肖像画の代表的な例とされており、19世紀に描かれた国立中央博物館所蔵の「韓元震肖像」の手本となったと考えられる。

문화유산 상세정보

제 0334 호
유형 334
유물 > 일반회화 > 인물화 > 초상화
문화예술 > 서화 > 회화 > 일반회화
조선시대
제천시
2012-07-06
-
회화·조각>초상화
-
섬유
60.5×80.9㎝
1점
대표 소재지 공개
27111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의암로 566-7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475
안함
27111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의암로 566-7(제천의병전시관 수장고)/(공전리)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475

소유 관리 점유 정보

참고 문헌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2022, 『충청북도 지정문화재 정기조사 보고서 제천시편』.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