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인이며 권상하의 장남인 초당 권욱(草堂 權煜, 1658~1717)의 초상이다. 권욱은 아버지의 스승인 송시열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송시열은 책을 읽으면 바로 외울 정도로 뛰어난 그의 재주를 아껴 유회(幼晦)라는 자를 지어주었다. 권욱은 24세인 1681년에 진사가 되어 영릉참봉(英陵參奉) 등 여러 관직을 거쳐 1716년 선산도호부사(善山都護府使)가 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이듬해에 사망하였으며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 비단에 채색을 사용해 그린 이 작품은 유건(儒巾: 유생이 쓰던 실내용 두건)을 쓰고 흰색 직령포(直領布: 옷깃이 곧은 겉옷)를 입고 가슴 아래에 검은 세조대를 맨 모습의 반신상으로 공수한 자세에서 단정한 유학자의 풍모가 두드러진다. 약간 붉은 입술과 생기 있는 눈이 두드러지는 차분한 얼굴은 배채한 후 옅은 갈색의 필선과 선염으로 표현하였고 눈과 이마의 주름, 법령은 옅은 먹선으로 그리고 입술 아래에는 밝은 색을 더하였다. 구레나룻과 턱수염은 매우 가늘고 유연한 필선으로 세밀하게 묘사하였고 미간과 콧잔등의 잔주름까지 그려내었다. 비교적 어두운 안색은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탁월했지만 병약했던 권욱의 병색이 완연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직령포는 부드러운 필선으로 간략하게 묘사해 부친의 뜻을 이어 가학을 계승한 권욱의 단아한 풍모와 성정을 드러낸다. 부친 권상하의 초상과 비슷한 시기에 그려졌지만 상이한 화풍으로 그려져 18세기 전반 사대부 초상화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작품이다.
This portrait depicts Gwon Uk (pen-name: Chodang, 1658~1717), a Confucian scholar of late Joseon who studied Confucianism under the great Confucian thinker Song Si-yeol (1607~1689). His father, Gwon Sang-ha, who had also been a pupil of Song Si-yeol, sat for his portrait in the same period. The unique difference in style between the two portraits reflects the diversity of the portraits of Confucian scholars painted during the early eighteenth centu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