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경상북도 고령군에 자리한 묵재 이문건(黙齋 李文楗, 1494〜1567)과 숙부인 안동김씨 김돈이(金敦伊) 부부묘를 충청북도 괴산군으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안동김씨 묘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출토 유물은 묘지(墓誌) 6점 백자항아리 1점, 철릭(帖裏) 1점, 여모(女帽) 1점, 세조대(細條帶) 1점으로 총 10점이다. 2012년 6월 8일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기탁되어 유지·관리하고 있다. 이문건은 『묵재일기(默齋日記)』와 『양아록(養兒錄)』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성주에 유배 중 족보를 필사하고 부인의 묘지명을 작성하였다. 안동김씨 김돈이는 1497년 태어나 1566년 죽었으며, 묘지는 이듬해인 1567년(명종 22) 남편 이문건이 썼다. 묘지 6점은 백자로 제작된 묘지명이다. 총 6매이며, 앞뒤에 명문이 있는데, 앞면은 초일(初一), 차이(次二)~차육(次六)으로 순서를 나타냈다. 이 중 두개는 유약이 발라져 있지 않다. 백자항아리는 파손된 것을 조합한 것으로 높이 16㎝이다. 출토복식은 남자 옷인 철릭 1점과 세조대 1점, 여모 1점 등 총 3점이다. 철릭은 남자의 옷으로 웃옷과 치마가 연결된 구조이다. 상의와 하의의 길이 비율과 소매형태 등을 통해 어느 시기의 옷인지 가늠할 수 있다. 옷 길이는 126(62/64)㎝이며, 화장[저고리의 깃고대 중심에서 소매 끝까지의 길이] 116㎝에 소매입구는 16㎝이다. 상의와 하의의 길이 비율은 1:1 정도다. 이는 조선 전기 철릭의 대표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세조대는 가늘고 긴 끈으로 뛰어난 직조 기술을 보여주며 양 끝에 풍성한 술이 달려 있다. 총길이 202㎝, 너비 0.7㎝이다. 끈 색은 퇴색했으나 청색 흔적이 남아 있다. 여모는 길이 43㎝, 너비 32㎝이며, 끈이 달려 있어 모자를 턱 아래 여밀 수 있게 만들었다. 끈 길이는 62㎝이며 끈의 너비 3.5㎝이다. 모자꼭지에는 매듭단추가 달려 있고 상부는 운문단(雲紋緞) 6쪽을 이어 만들었다. 방한용 모자인 듯 모자 안에 털을 넣었으며 쪽염의 흔적으로 푸른색이 남아 있다. 남자들이 겉에 입던 옷인 철릭은 16세기 홍계강(洪係江)의 철릭, 정응두(丁應斗)의 철릭, 조경(趙儆)의 철릭 등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전기의 옷으로 가치가 높다. 세조대는 완전한 형태로 출토되어 당시의 직조기술을 살필 수 있는 수준 높은 자료이다. 여모는 16세기에 출토되는 족두리형, 소모자형 모자와는 다른 구조와 형태를 띄고 있다. 해평윤씨(1660〜1701), 청주 청송심씨(1683〜1718), 청주 전주이씨(1722〜1779) 등의 여모로 이어지는 변화 추이를 확인할 수 있는 16세기 귀중한 자료이다.
Among the ten artifacts excavated from the tomb of Yi Mun-geon, a civilian official of the Joseon Dynasty, and his wife were six white porcelain memorial tablets, a white porcelain jar, a cheollik (military officer’s coat pleated at the waist), a yeomo (women’s hat with a closure at the chin) and a sejodae (thin macramé string made of silk used as a belt for men). Both front and back of the six memorial tablets are inscribed with writings, and from the front, it is marked with “the First Page” followed by “the Second” to “the Sixth.” The woman’s hat differs in style from cap-style hats such as jokduri (women’s ceremonial coronet) or somoja of the sixteenth century. As such, it is considered an important material for confirming changes in fashion of women’s hats in the sixteenth century, having prompted comparative studies with the hats worn by Lady Yun of the Haepyeong Yun clan, Lady Sim of the Cheongsong Sim clan, and Lady Yi of the Jeonju Yi clan in Cheongj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