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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Archives of Chungbuk Cultural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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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권근 삼대 묘소 및 신도비
시도지정 > 충북 기념물 음성 권근 삼대 묘소 및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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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陰城 權近 三代 墓所 및 神道碑
영문명 Tombs of Gwon Geun, His Son and Grandson with Memorial Stele, Eumseong
지정일/등록일 1980-01-09
관할시군 음성군
이칭/별칭 기념 32, 양촌권근삼대묘소및신도비, 陽村權近三代墓所및神道碑

문화재 설명정보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학자인 양촌 권근(陽村 權近, 1352~1409)과 그의 아들 권제(權踶, 1387~1445), 손자 권람(權擥, 1416~1465)의 삼대 묘로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능안에 위치하고 있다.
안동권씨 문충공파 묘역이 이곳에 들어선 것은 1444년이다. 권제가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치모노금동(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있던 아버지 권근의 묘소를 이곳 충주목 생동면(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으로 이장했기 때문이다. 그 후 1445년 권제가 죽어 이곳에 묻혔고, 1465년 권람이 죽어 이곳에 묻히면서 권근 삼대묘라 불리게 되었다.
권근은 고려 말에 태어나 조선 개국 후 큰 역할을 한 학자이자 정치가였으며 외교관이었다. 벼슬은 예문관대제학과 의정부찬성사에 이르렀고, 경서(經書), 사서(史書), 외교문서에 능해 문장의 사표(師表)가 되었다. 1409년 2월 14일 세상을 떠나 광주 땅에 묻혔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아들이 네명 있었으며 각각 권천(權踐), 권도(權蹈, 권제의 옛 이름), 권규(權跬), 권준(權蹲)이다.
권제는 벼슬이 우찬성이 이르렀고, 권근의 대를 이었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권제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이 권람이고 작은 아들이 권반(權攀)이다.
권람은 1450년(문종 1) 문과에 급제해 벼슬이 좌의정(1462년)에 이르렀다. 이처럼 빠른 출세를 한 것은 1453년 계유정난에 참여해 세조 집권의 토대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권람은 그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에 책봉되었다. 시호는 익평(翼平)이며 세조묘(世祖廟)에 배향되었다.
이들 3대묘는 권근의 묘가 가장 위에 있고, 권제의 묘가 중간에 있으며, 권람의 묘가 가장 아래 있다.
권근의 묘는 8각형의 봉분이 들어서 있는 형태로 부인과 함께 한 합장묘이다. 앞에 묘비 2기, 상석 2기, 문인석 4기, 장명등 1기가 있다. 봉분은 높이 2.4m, 너비 6.5m로, 호석 형태로 2단의 면석을 둘렀다. 면석 귀퉁이에는 쐐기돌을 끼워 면석과 봉분을 연결했다.
권근의 묘비는 부인 경주이씨 묘비와 함께 무덤 앞에 나란히 세워졌다. 권근의 묘비 전면에는 ‘조선국좌명공신 의정부찬성사 시문충공 양촌권선생지묘(朝鮮國佐命功臣 議政府贊成事 諡文忠公 陽村權先生之墓)’라 쓰여 있다. 후면에는 ‘유명정통구년갑자삼월초십일(有明正統九年甲子三月初十日)’이라 쓰여 있다. 묘비 앞에는 상석이 있고, 그 앞 가운데 장명등이 서 있다. 장명등 앞 양쪽에는 크기가 다른 문인석을 1쌍씩 2쌍 배치했다.
권제의 묘는 권근의 묘 아래에 있다. 봉분은 권근의 묘소와 같은 형태로, 8각형의 봉분 앞에 묘비와 상석이 있다. 묘비는 전면이 묘표, 후면이 묘갈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전면에는 위에 가로로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이라 썼다. 그 아래 세로 5행으로 ‘정통 을축 사월십육일졸 증영의정부사 길창부원군 행우찬성문경공지재선생권공제지묘 구월초삼일장(正統乙丑四月十六日卒 贈領議政府事吉昌府院君行右贊成文景公止齋先生權公踶之墓 九月初三日葬)'이라 썼다. 후면에는 세로 6행으로, 가계를 기술하고 과거 합격사실을 적었으며 마지막에 1457년(세조 3) 3월 4일에 비석을 세운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묘비 앞에는 장명등이 있고, 그 앞 양쪽에 문관석 1쌍을 배치했다.
권람의 묘는 권제의 묘 아래에 있다. 원형 봉분으로 앞쪽에만 사다리꼴 모양의 호석을 둘렀다. 그 앞에 권람과 부인 고성이씨의 묘비를 배치했다. 권람의 묘비 전면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이라 썼다. 그 아래 세로 7행으로 죽은 날짜와 장례일 그리고 벼슬을 기록했다. 묘비 후면에는 가계를 기술하고 과거 합격사실과 공신책봉 사실을 적었다. 이들 묘비 앞에는 하나의 상석과 장명등이 배치되었고 그 앞으로 문관석 1쌍이 배치되었다.
이들 묘역에서 동남쪽으로 100m 떨어진 곳에 권씨 3대 신도비가 위치하고 있다. 이들 신도비각에는 문충공(文忠公), 문경공(文景公), 익평공(翼平公) 신도비각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권근의 신도비는 가장 북쪽에 위치한다.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비신의 높이는 218㎝이다. 권제의 신도비는 북쪽 권근과 남쪽 권람 신도비 사이에 위치한다.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비신의 높이는 220㎝이다. 권람의 신도비는 권제 신도비 남쪽에 위치한다. 흰 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비신의 높이는 220㎝이다. 이들 신도비는 권근, 권제, 권람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하고 있다. 1991년에 신도비를 보호하기 위해 비각을 설치했다.
권근 3대 묘소는 봉분, 묘비와 석물, 신도비 등 원형 그대로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는 귀중한 사례로, 조선 초기 사대부의 묘제를 살펴보고 연구하는데 표본이자 모범이 된다. 또한 이들 묘소를 관리하고 기록한 내용까지 사당과 재실에 잘 보존되고 있어 더욱 가치가 크다.
These three tombs, located at 377-15, Neungan-ro, Saenggeuk-myeon, Eumseong-gun, are the graves of Gwon Geun (1352~1409), a renowned Confucian scholar-official of late Goryeo (918~1392), his son Gwon Je, and his grandson Gwon Ram, who served the following Joseon dynasty (1392~1910). Standing beside the graves, which are arranged one above another, is a stone memorial stele honoring their lives and achievements.

문화유산 상세정보

제 0032 호
기념 32, 양촌권근삼대묘소및신도비, 陽村權近三代墓所및神道碑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사회생활 > 의례생활
사회생활 > 기념 > 비 > 신도비
조선시대
음성군
1980-01-09
-
분묘ㆍ비 등>분묘ㆍ비
-
석재, 흙
단분(單墳)
배치(봉분, 상석, 문인석·무인석, 묘갈, 혼유석), 가첨석/비신석/비대석
-
일원
19,873.0
대표 소재지 공개
27616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능안로 377-15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388-2
대표 보관장소 공개
27616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능안로 377-15(방축리)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388-2

소유 관리 점유 정보

참고 문헌

충주대박물관, 1999, 『양촌권근삼대묘소 정밀지표조사』.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불교중앙박물관, 2019, 『금석문 탁본 조사 보고서 강원도Ⅱ 충청북도』, 도반미디어.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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