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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Archives of Chungbuk Cultural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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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 배극렴 묘소
시도지정 > 충북 기념물 증평 배극렴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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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曾坪 裵克廉 墓所
영문명 Tomb of Bae Geuk-ryeom, Jeungpyeong
지정일/등록일 1994-12-30
관할시군 증평군
이칭/별칭 기념 98

문화재 설명정보

조선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된 배극렴(裵克廉, 1325~1392)의 묘소이다.
배극렴은 본관이 성주(星州). 자는 양가(量可), 호는 주금당(晝錦堂)·필암(筆菴), 시호는 정절(貞節)이다. 아버지는 위위시소윤(衛尉寺少尹)을 지낸 배현보(裵玄甫)이고 어머니는 성주이씨이며,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나갔다. 고려 말 왜구를 토벌하는데 공을 세우고, 상주목사 등 외직에 나가 선정을 베풀었다. 1388년 요동 출병 때 이성계를 따라 조전원수(助戰元帥)로 참전하여 위화도회군을 도와 1390년(공양왕 2) 회군공신(回軍功臣)에 추록되었다. 이후 중군총제사(中軍摠制使)로 도총제사(都摠制使) 이성계의 병권 장악을 도왔다. 1392년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에 올라 조준(趙浚)·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하여 조선을 개국하였다.
개국공신 1등에 오르고 성산백(星山伯)에 봉해졌으며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에 올랐으나 그 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태조 계비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 소생인 방석(芳碩)을 세자에 오르게 하여 태종에 의해 폄하되기도 하였다. 당시 아들이 없어 누이의 외손인 안순(安純)을 봉사손으로 삼았다.
한동안 묘소를 실전(失傳)했다가 조선 말에 되찾았다. 나라에서 주변 묘를 옮기게 하고 묘비를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했다. 신도비는 1888년(고종 25)에 세웠는데, 이때 석양과 망주석도 함께 세웠다. 봉분은 규모 347×437×170㎝의 장방형이며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상석의 규모는 120×84×19.5㎝이다.
조선 개국공신 1등에 첫 번째로 이름이 오른 인물의 묘소이다. 봉분과 상석이 당시의 것으로 보이며 신도비 등 석물은 새로이 만들어진 것이다. 조선 건국에 주도적인 인물로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Bae Geuk-ryeom (1325~1392; pen-name: Piram) helped General Yi Seong-gye withdraw the troops to Gaegyeong from Wihwado Island in the Yalu River after being dispatched to Liaodong to fight against the new Ming Dynasty of China in 1388 and establish the Joseon Dynasty along with Jo Jun and Jeong Do-jeon in 1392. The well-preserved stele for Bae Geuk-ryeom and a pair of stone posts were set up in 1888.

문화유산 상세정보

제 0098 호
기념 98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사회생활 > 의례생활
조선시대
증평군
1994-12-30
-
분묘ㆍ비 등>분묘
-
석재, 흙
단분(單墳)
배치(봉분, 상석, 신도비, 문인석, 무인석, 망주석, 석양)
-
1곽
1,600.0
대표 소재지 공개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송산리 산28
대표 보관장소 공개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송산리 산28

소유 관리 점유 정보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