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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Archives of Chungbuk Cultural Heritage

문화유산 검색
증평 사곡리 우물
시도지정 > 충북 기념물 증평 사곡리 우물
문화유산 검색
한자명 曾坪 射谷里 井
영문명 Well in Sagok-ri, Jeungpyeong
지정일/등록일 2008-08-01
관할시군 증평군
이칭/별칭 기념 143

문화재 설명정보

증평읍 사곡리 사청마을에 있는 조선시대에 조성된 마을 공동우물이다.
마을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는 이 오래된 우물은 일반 우물의 1.5배 정도가 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우물 맨 밑에 버드나무 4토막으로 6각형의 틀을 설치하고 그 위에 석축을 쌓아 올렸다. 바닥은 반석이며 버드나무 사이로 큰 물구멍이 3개가 있다.
돌을 쌓은 방식은 돌의 이가 맞물리는 자연석과 깬 돌을 사용한 바른 층 쌓기이며 수심은 2.8∼3.0m로 사계절 가뭄이나 장마철에 관계없이 일정수위를 유지하며 겨울에는 물이 따뜻하고 여름에는 물이 찬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우물 왼쪽에는 우물 유래비가 오른쪽에는 부모에 대한 도리를 다하라는 계훈비가 있다.
우물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은 다음과 같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노승이 마을을 지나다 한 집에 들러 물을 청했는데 그 집 아낙이 20리가 넘는 길을 오가며 물을 떠다 주었다. 이에 노승이 아낙의 노고에 보답하여 우물터를 찾아주면서 “이 우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장마가 닥쳐도 물이 늘지 않지만 꼭 세 번 넘칠 것이오. 우물이 넘칠 때마다 나라에 큰 변이 일어나는데 세 번째 넘치는 날에는 말세(末世)가 될 것이니 그때는 마을을 떠나시오.” 말하며 홀연히 사라졌다 한다. 이 전설로 인해 ‘말세우물’로 불리게 되었으며, 노승의 말처럼 1592년 임진왜란 때와 1910년 경술국치 때 물이 넘쳐 나라의 위기를 알렸다 한다.
조성연대는 15세기 중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1947년 4월 우물 석축 일부를 부분 보수하였고, 1996년 5월 마을 사람들이 유래비를 세웠다. 2007년에는 우물을 원형으로 복원하고 우물이 세 번째 넘치지 않기를 매년 정초에 기원하고 있다. 마을 공동우물의 축조 방식을 알 수 있고, 우물제 등 민속자료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
This village well is presumed to have been dug in the mid-fifteenth century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e well is about 3m deep, and maintains the same depth all year round regardless of drought or flood. The water feels warm in winter and cold in summer. It is a valuable historical material which shows how wells were dug during the early Joseon period.

문화유산 상세정보

제 0143 호
기념 143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주거시설
주생활 > 건축부재 > 배관설비 > 우물방틀
조선시대
증평군
2008-08-01
-
교육ㆍ사회사업에 관한 유적>우물
-
석재
원형
-
수심 2.8~3.0m
1기
159.8
대표 소재지 공개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사곡리 1125
대표 보관장소 공개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사곡리 1125

소유 관리 점유 정보

참고 문헌

충북문화유산지킴이, 2014, 『충북문화재 모니터링 점검보고서 下』.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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