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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박순행·박용호·양주승 초상
시도지정 > 충북 문화유산자료 이상수·박순행·박용호·양주승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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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李象秀·朴洵行·朴龍鎬·梁柱承 肖像
영문명 Portraits of Yi Sang-su, Park Sun-haeng, Park Yong-ho and Yang Ju-seung
지정일/등록일 2008-07-25
관할시군 보은군
이칭/별칭 문자 64, 추양정사 영정, 秋陽精舍 影幀

문화재 설명정보

보은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이상수(李象秀, 1820~1882) 및 그 문하생의 초상으로 보은군의 추양정사(秋陽精舍)에 봉안된 초상 일곱 점 중 제작 당시의 원형이 보존된 네 점이다. 나머지 세 점은 파손이 심해 최근 복사본을 제작 봉양하였다. 추양정사는 1912년 조선 말기의 유학자인 박문호(朴文鎬, 1846~1918)가 스승인 이상수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세웠으며 후에 회인 유림의 주도로 이상수의 문하에서 배출된 박문호, 양주승(梁柱承 ?~1910), 양주학(梁柱學 1850~?), 박용호(朴龍鎬 1859~1927), 박순행(朴洵行 1866~1916), 양주하(梁柱河)의 초상을 추가 배향하고 춘추로 제향하고 있다. 이상수는 송시열(宋時烈, 1607~1689)과 권상하(權尙夏 1641~1721)의 학통을 이어받은 한원진(韓元震, 1682~1751)의 학맥을 계승한 유학자이다.
네 폭의 초상화는 비단 바탕에 채색과 먹을 사용해 그렸으며 반신상이 두 점, 전신상이 두 점이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모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보은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이지만 박문호가 1912년에 추양정사를 건립하고 봉안한 이상수 초상 외에 박순행, 박용호, 양주승의 초상은 제작시기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상수의 초상은 비단 바탕에 먹으로 그린 반신상이며 학창의(鶴氅衣, 덕망 있는 선비가 입던 포. 학과 같이 고결하고 숭고함을 상징하는 옷)에 붉은색 세조대를 묶고 방건(方巾)을 쓴 모습이다. 화면의 오른쪽 아래에 ‘구헌(久軒)’이라는 관지(款識)가 있지만 화가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미소를 머금은 얼굴의 눈, 코, 귀 부분에 약간의 음영이 가해졌으며 옷주름은 비수의 차이가 있는 간략한 필선으로 표현하였다. 신체 뒤쪽에 담묵(淡墨)의 선염을 가해 인물을 부각시키는 배경처리 기법을 사용하였다.
박문호의 아들인 박순행의 초상은 비단에 먹으로 그린 반신상으로 대창의(大氅衣, 조선시대 사부들이 입던 곧은 깃의 포. 대창의에는 주로 세조대를 띠고 복건이나 정자관, 동파관을 썼다)에 정자관(程子冠)을 쓴 모습이다. 화면 왼쪽 위에 “순암 박선생(肫菴 朴先生)”이라는 제기가 있다. 이목구비와 옷주름에 명암법을 사용하여 입체감을 표현하였고 신체 주위에 옅은 먹색을 더하고 신체의 아래 부분은 점차 흐려지는 것처럼 묘사하였다. 이처럼 반신상에서 신체 아래 부분을 흐릿하게 처리하는 기법은 당시에 유입된 사진 촬영법을 반영한 것으로 주목된다.
박용호 초상은 비단에 채색을 사용해 그렸으며 박순행 초상처럼 창의에 정자관을 쓴 모습으로 손을 앞으로 모으고 의자에 앉은 전신의좌상(全身椅坐像)이다. 가는 필선을 잇대어 가하고 옅은 선염을 더해 얼굴과 의복의 명암을 표현하였다. 다른 초상에 비해 매우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며 배경색을 사용한 점이 특징적이다. 현재 상태로 표구할 때 좌우의 여백이 많이 잘린 것으로 여겨진다.
양주승 초상은 비단에 먹으로 그린 전신부좌상(全身趺坐像)으로 심의(深衣, 선비가 한거할 때 착용한 평상복)에 복건(服巾)을 쓰고 바닥에 앉은 모습이다. 심의의 깃이 벌어졌고 옷고름을 맺은 모양이 특이하며 오른손으로 옷고름에 달린 대나무 가지와 술을 잡고 왼손에는 『효경(孝經)』을 들고 있다. 얼굴과 신체의 표현에 강한 음영법이 사용되었으며 지나치게 가는 목이나 앉은 자세, 손의 모양이 자연스럽지 않고 신체의 전체적인 비례가 적절하지 않아 어색한 느낌이 든다.
이들 초상은 모두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초상화법에서 벗어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대두된 채용신(蔡龍臣, 1850~1941)의 초상화법과 서양에서 전래된 사진술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초상화 양식을 보여준다. 가늘고 섬세한 붓질을 반복하여 얼굴에 명암을 가하고 선염으로 옷주름을 강조해 입체감을 드러내는 기법은 모두 당시 초상화에 새롭게 나타난 특징적인 양상이라 할 수 있다.
초상화의 기법으로 보아 네 점을 각각 다른 화가가 그린 것으로 여겨지며 그다지 높은 수준의 작품은 아니지만 인물의 특징적인 표정이나 모습, 당시의 복식 등을 비교적 정확하게 포착하였다. 20세기 초에 제작된 초상이지만 크기, 재질, 양식에서 상이한 특징을 보여 조선 말기의 초상화에서 근대의 인물화로 변화하는 과정의 다양한 양상을 드러내는 예로 평가된다. 또한 보은 지역에서 활동한 화가의 그린 것으로 여겨짐으로 당시 초상화의 지역 양식을 살펴보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These four portraits, selected from among the seven portraits dedicated to the Chuyang Jeongsa Shrine in Boeun-gun due to their good state of preservation, depict the widely respected local Confucian scholar Yi Sang-su (1820-1882) and three of his pupils. The Chuyang Jeongsa Shrine was established in 1912 by a Confucian scholar of the late Joseon period named Park Mun-ho (1846-1918) to enshrine the portrait of his mentor Yi Sang-su. The local community of Confucian followers in Hoein have placed inside the shrine a number of additional portraits of Yi’s pupils, including those of Park Mun-ho, Yang Ju-seung (?-1910), Yang Ju-hak (1850-?), Park Yong-ho (1859-1927), Park Sun-haeng (1866-1916) and Yang Ju-ha, and hold memorial ceremonies there every spring and autumn. These four portraits, two of which are half-length and two full-length, are all painted on silk.

문화유산 상세정보

제 0064 호
문자 64, 추양정사 영정, 秋陽精舍 影幀
유물 > 일반회화 > 인물화 > 초상화
문화예술 > 서화 > 회화 > 일반회화
조선시대
보은군
2008-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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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조각>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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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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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0×85~106㎝
4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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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소재지 공개
28313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로 143(명암동)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87
안함
28313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로 143(국립청주박물관 수장고)/(명암동)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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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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