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장담 충신각은 조선 영조 대에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 장담(張潭)의 정려이다. 1729년(영조 5) 청안면 청룡리에 세웠던 것을 경지정리사업으로 인하여 인동장씨 문중 집성촌인 조천리에 이건하였다. 장담은 호는 수풍정(樹風亭), 본관은 인동(仁同)으로 통례(通禮) 장인계(張仁溪)의 후손이다. 1728년(영조 4) 청주에서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벼슬이 없는 처사(處士)로서 의병을 일으켜 난을 진압하다 순절하였다. 후에 이 사실이 주문(奏聞)되어 충신으로 정려되고, 정조 대에 표충(表忠)을 명하고 좌승지에 증직(贈職)되었다. 충신각은 높은 석주형 초석 위에 짧은 두리기둥을 세운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석주형 초석이나 이익공계통의 공포 등은 정려로서의 격식을 갖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내부에는 편액과 「이건 중수기(移建 重修記)」가 걸려있으며, 정면에는 「충신문(忠臣門)」·「백세수풍(百世樹風)」이란 현판을 달고 보호책을 둘렀다. 장담 충신각은 높은 석주형 초석 위에 짧은 두리기둥을 세우고 사면에 살을 설치하여 정려각의 전통적인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Jang Dam accomplished the feat of suppressing the rebellion led by Yi In-jwa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gjo (r. 1724~1776). This monument, set up in 1729 in Cheongnyong-ri, Cheongan-myeon, was relocated to nearby Jocheon-ri, a village inhabited by members of the Indong Jang clan. It is a tiled wooden structure measuring 1 kan* by 1 kan with a gable roof. The high stone pillars and double-wing brackets show the traditional form of monument houses. (*kan: a unit of measurement referring to the distance between two colum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