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림사는 1688년(숙종14) 석경일(釋敬一)이 찬한 낙영산공림사사적비(落影山空林寺事蹟碑)에 의하면 자정국사(慈淨國師)가 창건한 사찰이다. 1399~1402년간 함허당(涵虛堂) 득통화상(得通和尙)이 중창하여 현대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국전쟁기간에 대웅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던 것을 1980년대 탄성스님이 중건하였다. 정확한 제작시기와 제작처를 알 수 있으나 미상의 시기에 땅 속에 묻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전언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이후에 발견되어 근래에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종을 거는 용뉴에는 음통은 없으나 역동적인 모습의 용이 잘 표현되어 있다. 비록 왼쪽다리가 결실되었으나 상대에는 3개의 범자문(옴), 중앙의 4개의 문양이 선명한 유곽과 천부상 4구등이 잘 남아 있다. 전체적인 종의 형태와 명문, 용뉴나 유곽과 유두, 천부상, 문양 등이 전형적인 조선시대 동종의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종의 구획을 돌출된 선으로 표현한 중국 동종의 영향도 볼 수 있어 조선중기이후의 전형적인 동종의 형태이다. 또한 1770년대 경기, 충청, 경상권에서 활동한 주종장 이만돌(李萬乭), 이만중(李萬重), 이만숙(李萬淑), 이영희(李永熙) 등으로 이어지는 주종장 계보의 유파의 작품들과 유사한 점이 있어 이들과의 관계도 주목할 만하다.
The Bronze Bell of Gongrimsa Temple in Goesan is known to have been produced in 1776 by the temple itself, but it is thought to have been buried in the ground at an unknown time and lost for many years. Having apparently been rediscovered after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bell has been used until recently. Notably, Yongnyu at the top of this bell, which is hung from a metal chain, has a dynamic decorative feature cast in the form of a dragon, although there is no tube for conveying s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