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成運; 1497~1579은 조선전기의 학자이다. 성운의 본관은 창령(昌寧), 자는 건숙(健叔), 호는 대곡(大谷)이다. 1545년(명종 1)에 을사사화로 형 성우(成遇)가 화를 입고 죽음을 당한 후 처향(妻鄕)인 보은으로 낙향하여 줄곧 이곳에 은거하였다. 참봉, 도사 등의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시문에 능했고, 불교적인 취향의 글을 많이 남기고 있다. 그가 죽자 선조가 제문을 내려 애도하였으며, 그 후 승지에 추증되었다. 성운은 처가의 도움으로 이 집을 짓고 ‘사암(斯庵)’이라 불렀으며, 그의 사후에는 ‘대곡재(大谷齋)’라고 하였다가, 후에 그의 제자들이 그를 사모하여 ‘모현암(慕賢庵)’이라고 이름 지어 부르게 되었다. 성운은 이곳에서 서경덕(徐敬德)ㆍ조식(曺植)ㆍ이지함(李之菡)ㆍ성제원(成悌元) 등과 교류하며 학문을 닦았고, 후학을 가르쳤는데, 마을 자랑비에 그 기록이 전한다. 이 건물은 현재 1995년부터 사찰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모현암은 서당골 골짜기 깊숙이 산자락이 내려오는 계면부에 서남향하여 위치하고 있다. 지형상 전면이 낮은 형태를 하고 있어 3단의 자연석 석축을 쌓아 대지를 조성하였다. 건물은 ‘모현암(慕賢庵)’이란 편액이 걸려 있는 본채와 부속채로 구성되어 있다. 본채인 모현암은 정면 4칸, 측면 2칸,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