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륵사는 월악산 계곡에 자리한 사찰이다. 신륵사에 대한 정확한 연혁은 알 수 없다. 1960년대에 기록된 『월악산신륵사중수기(月岳山新勒寺重修記)』에 따르면, 581년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한 후 704년 원효, 고려 공민왕대에 무학, 조선 광해군대에 사명대사 등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하나 신빙성은 없다. 다만 현재 신륵사 내에는 나말여초에 건립된 삼층석탑(보물 제132호), 조선후기에 건립된 극락전이 현존하고 있다. 또한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신륵사가 표기되어 있지 않는 반면, 1757년 『여지도서(與地圖書)』와 조구명(趙龜命; 1693~1703)의 시문집 1741년 『동계집(東鷄集)』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신륵사는 임난 이전 폐사된 후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에 중창된 것으로 추측된다. 영산회상도가 봉안된 제천 신륵사 극락전은 현재 충북유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된 조선후기 목조건축이다. 영산회상도는 석가여래가 영축산에서 설법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신륵사 극락전에 봉안된 영산회상도는 중앙에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12보살과 사천왕, 제석천왕과 범천, 벽지불, 아난과 가섭 등의 16나한, 그리고 화면 하단에 복숭아와 과일을 손에 받쳐 들고 있는 동자 두 명으로 구성되었다. 신륵사 극락전 영산회상도는 화면의 하단에 화기를 기록하는 다른 불화와 달리 화면의 좌측과 우측, 그리고 하단에 각각 화기를 기록하여 특징적이다. 화면의 좌우 폭의 훼손으로 인하여 화기 일부가 잘려져 있어 화기 전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나 ‘가경십■년 ■■신늑사 후불정봉안자(嘉慶十■年 ■■神勒寺 後佛幀奉安子)’라는 현존 기록을 통해 19세기 초 신륵사의 후불탱화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