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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Archives of Chungbuk Cultural Heritage

문화유산 검색
단양 원주이씨 효열각
시도지정 > 충북 문화재자료 단양 원주이씨 효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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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丹陽 原州李氏 孝烈閣
영문명 Unknown
지정일 2018-11-30
관할시군 단양군
이칭/별칭 문자 93

문화재 설명정보

이상문의 본관은 원주 (原州)이며, 169년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면 평동리에서 통덕랑(通德郞) 이만춘(李萬春)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834년 동몽교관 조봉대부에 증직되어 이상문을 기리기 위해 정려(旌閭)가 매포읍 평동리(가삼말)663번지에 세워졌다. 이상문(1697~1767)은 효성이 지극하여 병석의 부모를 위하여 한 여름 홍수속에서 얼음을 구해 드렸고 여름에 꿩고기를 구하여 봉양하고 어머님이 병으로 돌아가시려 하자 생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손가락을 잘라 혈을 먹이는 등 출천지효자 효성에 하늘이 감동한 소치라 하여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순조 28년(純祖 1828)에 정려(旌閭)를 내렸고 1834년 동몽교관 조봉대부(童蒙敎官 朝奉大夫)로 증직(贈職)하여 이 정려(旌閭)가 평동리에 세워졌으며 그 후 소화(昭和) 15년(1940, 庚辰) 10월 29일에 증수하였고 1992년 매포읍 도시계획에 의하여 이곳으로 옮겨졌으며 그 이후 단양종중에서 2015년 약 2개월에 걸쳐 기둥 및 기와을 원상태로 복원하였다. 이 정려(旌閭)구조는 콘크리트 기단 위에 사각주초를 놓고 원주을 세우고 있다. 사방으로 홍살을 돌렀으며 공포는 이익공계통이다. 가구는 삼량가 이고 옆면에는 바람을 막기 위해 풍판을 설치하고 내부에는 동몽교관 조봉대부(童蒙敎官 朝奉大夫)라는 현판과 행적기가 있으며 사방으로 토석혼축 담장을 두르고 있고 앞에는 일각대문이 있다.
전의이씨 열녀문은 조선시대 이민열(李民烈)의 부인 전의이씨(全義李氏1812~1885)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목조 기와 정려이다. 전의이씨는 1812년 (숙종 12)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나 이민열과 결혼 후 남편이 상업으로 개성에서 객사하자 25세의 혼자 몸으로 남장을 하고 남편의 시신을 찾아 운반하여 평동리 선영 밑에 장례지내고 양자로 대를 이으며 침선으로 위토를 마련하는 등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감명을 받았다. 구조는 콘크리트 기단위에 방형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우고 있다. 이주두의 이익공계통의 공포이고 사방으로 홍살을 돌린 굴도리 삼량가의 가구이다. 지붕은 풍판을 설치한 맞배지붕 골기와이다. 지붕은 풍판을 설치한 맞배지붕 골기와이다. 내부에는 전의이씨정려기(全義李氏旌閭記)가 있으며 사방으로 토석혼축 담장을 두르고 있고 앞에는 일각대문이 있다. 이 정려(旌閭)는 고종(高宗)21년 (1884년)에 본관 원주(原州) 이민열(李民烈)의 처 전의이씨(全義李氏)를 기리 위하여 나라에서 평동리 가삼말에 세워졌으며 그 후 몇 차례 중수(重修)를 거치고 1992년 매포읍 도시계획에 의하여 이곳으로 옮겨졌다.

문화재 상세정보

문자 93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사회생활 > 의례생활
조선시대
단양군
2018-11-30
-
제사ㆍ신앙에 관한 유적>사우
-
목재
편액, 맞배지붕
가구식구조, 목구조
-
3동
-
대표 소재지 공개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읍 평동리 873-8
대표 보관장소 공개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읍 평동리 873-8

소유 관리 점유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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