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문은 김창식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924년에 건립한 효자문이다. 김창식은 어린 나이에 모친의 병환을 맞아 명약을 구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다 5년 후 병세가 악화되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드려 소생시켰다. 그 후에 10세에 모친이 돌아가시게 되고, 5리나 되는 묘소를 매일 같이 닭이 우는 시간에 참배하니 무릎과 손으로 집었던 자리는 떼가 죽었고, 눈물을 흘린 자국이 보였으며, 성묫길 옆의 벚나무에 던진 돌이 쌓여서 성황당이 되었고 호랑이가 보살펴 주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