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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Archives of Chungbuk Cultural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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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이씨 열녀각
시군지정 > 음성 향토유산 성주이씨 열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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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星州李氏 烈女門
영문명 Unknown
지정일/등록일 2016-12-26
관할시군 음성군
이칭/별칭 음성 향토 26

문화재 설명정보

이 열녀각은 정면, 측면 각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으로 사면은 홍살로 막고 양옆에 풍벽을 달았다. 정려 안의 현판에는 "절부 증가선대부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관행봉직낭군자감판관김선경처 증정부인성주리씨지문(節婦 贈嘉善大夫戶曺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管行奉直郎軍資監判官金善慶妻 贈貞夫人城州李氏之門)"이라 되어 있고, 뒷면에는 "聖上 즉위 삼년 을축 사월 이십일 리건후 사십팔년 임오 오월오일 중수 우오십사년 후을사 사월이십구일 이건 우차평리 통산전 구묘(聖上 卽位 三年 乙丑 四月 二十日 異建後 四十八年 壬午 五月五日 重修 又五十四年 後乙巳 四月二十九日 移建 右車平里 通山前 舊卯)"라 되어 있다. 성주이씨는 문관 이휘의 딸로 생극면 임곡리에서 출생하였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자감 판관으로 있던 부군 김선경은 싸움터로 나가고 여자들만 데리고 집에 있었다. 충주에서 이긴 왜적은 음성지방에 들어왔다. 부인이 피난을 가다가 왜적과 마주쳤다. 왜적은 부인에게 덤벼들었다. 부인은 딸을 껴안고 짐승과 같이 덤비는 왜적에게 반항했으나 여자로서는 적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왜적들은 이씨를 끌어안고 손목을 잡고 젖을 만지는 등 희롱을 하였다. 이때 뜻밖에 힘센 젊은 장사가 나타나 단숨에 왜적을 쳐 부수니 왜적은 모두 달아났다. 이 젊은 장사는 당시 주부 벼슬을 지내던 하건민이라는 사람이었다. 이씨 부인은 그에게 백배사례하고 딸을 아내로 삼아 주기를 청하고 왜적의 손이 닿았던 젖과 손목을 칼로 잘라 버리고 자결하였다. 부인이 자결하자 오색이 영롱한 구름 같은 서기가 수일 간 감돌고 있어 세상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훗날 이 사실이 알려져 임금께서 정려를 내렸다.

문화유산 상세정보

제 0026 호
음성 향토 26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사회생활 > 의례생활
조선시대
음성군
2016-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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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신앙에 관한 유적>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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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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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소재지 공개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 525-5
대표 보관장소 공개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 5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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