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농사직설』은 중국과는 다른 우리나라의 토지에 맞게 곡식을 재배하기 위하여 1429년(세종 11) 정초(鄭招; ?~1434) 등이 간행하였다. 표지 이면과 발문 이후에 묵서의 흔적이 있으며 발문 끝에는'풍양후인 봉두조씨 가장(豊壤後人 鳳頭趙氏 家藏)'이라는 기록이 필사되어 있으며, 권말(卷末)에 ‘간암소장(澗菴所藏)’이라는 기록이 있다. 간암이라는 호를 사용한 인물로는 조선 후기 문신인 박치엽(朴致曄; 1790~1874)과 이인석(李寅碩, 1821~1858)이 있다. 간암(澗菴)이 정확히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소장 기록은 책의 전래 내역을 파악하는데 주요한 단서가 된다. 본 『농사직설』은 『농가집성』이 간행되기 바로 전해인 1654년 종식잡방(種植雜方) 등을 덧붙여 1654년(효종 5) 공주목사 신속과 충청도 관찰사 강백년, 충청도사 홍주세의 발문을 더해 간행하였다. 즉, 본 『농사직설』은 『농가집성』이 간행되기 직전 충청도 감영에서 자체적으로 간행한 사례이다. 본 『농사직설』은 『농가집성』이 간행되기 직전 충청도 감영에서 자체적으로 간행한 사례로 양란 이후 농업사와 인쇄문화를 이해할 수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