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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수리 신비의 물에 지친 몸과 마음을 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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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창제 등 나라 일에 심혈을 기울이던 세종대왕은 건강이 악화되었다. 특히 안질이 심했는데 충북 청주의 초수리(椒水里) 약수가 효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 청주에 행차했다. 약 60일을 머무르며 안질을 치료하고 돌아왔는데, 상당한 치료 효과를 보았다. 임금의 행차는 나라 기능의 이동이었으므로 청주의 지역적 위상이 높아졌고 백성들도 많은 은택을 입었다.청주는 과인이 머물던 땅이니, 어찌 귀하지 아니할까? 한양으로 돌아가지만 청주가 내 몸과 마음을 보살펴 준 고마운 땅이라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왕의 안질을 낫게 할 물이 없느냐?1444년(세종 26) 세종대왕의 피로는 극에 달해 있었다. 수년간 한글 창제에 매달린 피로가 쌓여 정신적인 고충은 물론 안질 등의 질병이 심했다.이런 상태로 어떻게 정사를 돌본단 ...
등록일
2026-09-16 10:52:44
청주와 속리산에서 피 묻은 손을 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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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수많은 충신들을 잔혹하게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이름 모를 피부병에 시달렸다. 세조는 마침내 자신의 병이 약으로는 치료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부처의 힘으로 고쳐 보기 위해 청주를 거쳐 보은의 속리산에 행차하여 요양을 하며 병을 치료했다. 요양뿐 아니라 순행(巡幸)의 의미도 가진 행차였으며, 속리산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 것을 맹세했다고 전해진다.어린 단종을 죽이고 수많은 목숨과 바꾸어 보위를 얻었으니 내 죄가 어찌 적다 하리요? 참회하는 마음으로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고 중화대국도 섬나라 오랑캐도 넘볼 수 없는 강국 조선을 세우리라.온몸에 악창이 번지다1464년. 즉위 10년이 된 세조는 병이 들어 극심한 악창에 시달리며 연일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몇 ...
등록일
2026-09-15 10:39:05
청주 우물가에서 삼한 통합의 꿈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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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통일신라 말, 후삼국시대 궁예 밑에서 세력을 키운 왕건은 고려를 세우고 후백제의 견훤과 치열한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왕건은 견훤을 치러 남행하던 길에 청주를 거치게 되었다. 청주의 만석꾼 호족인 한란이라는 자가 왕건을 환대하고 군량미와 우물물을 제공하는 등 기여하였다. 이를 인연으로 왕건은 한란을 발탁하고 한란은 청주한씨의 시조가 되었다. 한란이 왕건의 군대에게 제공한 방정우물은 아직도 남아 있다.고려 군사들의 목을 축여 주니 방정의 우물은 삼한 통일의 일등공신이 될 만하다. 내 기필코 고려의 이름으로 삼한 통일을 이룩하여 이 물처럼 시원한 역사의 새 길을 열리라!누가 삼국 통일을 이룩할 것인가?통일신라 말기. 신라는 이미 그 빛을 잃고 후백제(後百濟), 후고구려(後高句麗)가 일어나 혼란스러운 후삼국...
등록일
2026-09-14 10:03:47
인재를 얻기 위해 세 번 행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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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조선 건국을 앞둔 이성계(李成桂)는 자신을 뒷받침해 줄 인재가 필요했다. 배극렴이라는 장군은 고려 말 많은 무공을 세운 출중한 인물이었는데 갑자기 세상을 등지고 산에서 은거했다. 이에 이성계는 배극렴(裵克廉)이라는 인재를 얻기 위해 세 번이나 충북 충주시의 삼방리(三訪里)에 있는 어래산(御來山)을 찾아갔고 배극렴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의 공신으로서 조선 제1대 재상이 되었다.무릇 새는 나무를 가려 깃들고 지혜로운 자는 주인을 가려서 섬기는 법이오. 이제 고려 왕조는 썩은 살과도 같으니 어찌 새로운 세상을 꿈꾸지 않을 수 있겠소. 나를 도와주기를 간청하오. 나 이성계는 그대가 필요하오!개혁을 향한 첫걸음1388년(고려 우왕 14) 고려 장수 이성계는 요동 땅을 치기 위해 위화도(威化島)까지 진군했다. 하지...
등록일
2026-06-26 13:59:49
청주에서 국난 극복을 위해 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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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즉위하자마자 거란의 침입이라는 국난을 만난 현종은 개경을 떠나 몽진 길에 나섰다. 어렵게 거란군의 추격을 따돌리며 경기도를 거쳐 전남 나주까지 내려갔던 그는 고려군이 개경을 수복하자 청주에 머물렀다. 청주에서 현종은 국가적 불교 행사인 연등회를 열고 그 당시 동아시아의 최대 관심이던 대장경을 각판하겠다는 발원을 함으로써 민심을 수습하고 국난 극복의 의지를 다졌다.고려 국왕의 불심과 하나 된 군신들의 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고려는 반드시 (초조)대장경의 판본을 각성(刻成)하겠나이다. 거란이 고려에서 물러가게 하시고 국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숨 막히는 피난 길1010년 10월 거란은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해 왔다. 어려서부터 온갖 수난을 겪으면서 왕위에 오른 현종은 왕이 되자마자 거란 침입...
등록일
2026-06-26 13:17:05
먼 길 떠나며 서울고개에서 눈물 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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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9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된 단종은 기댈 곳이 없었다. 왕권은 약했고 그 틈을 타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였다. 왕위를 잃고 유배 길에 오른 단종은 충북 제천을 지나다 남천동에서 동현동으로 넘어 가는 고개에서 쉬게 되었다. 고개에서 유배 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고 해서 그 고개 이름이 서운고개로 불리다가 최근에 서울고개가 되었다고 전해진다.내 어찌 이 고개를 넘어 귀양을 가는 것이 원통하지 않겠느냐. 태어나 자란 궁을 떠나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는구나. 이제 가면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고개를 넘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구나.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단종성군 세종이 승하하자 조선은 커다란 구심점을 잃은 채 불안정했다. 보위를 이은 세종의 장남 문종(文宗)은 ...
등록일
2026-06-26 13:02:19
마지막 황제 하룻밤 행궁터에 머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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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이성계는 정통성이 부족한 고려의 우왕(禑王)과 창왕(昌王)을 폐위시키고, 공양왕(恭讓王)을 세웠다. 고려 말의 어지러운 정국 속에서 번뇌하던 공양왕은 시름을 달래고자 변복을 하고 충북 도락산 자락에 숨어들었다. 그곳에는 짚신을 만들며 살아가는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풍수지리에 혜안이 있는 기인이었다. 공양왕은 신분을 숨겼지만 노인은오늘밤 우리 집이 궁궐터가 될 것이라며 왕을 알아보고 절했다.산 속의 초막이 행궁이 된 것이다.나는 일평생 입을 것, 먹을 것과 시중할 사람이 모두 풍족하게 편안히 지내다가 갑자기 왕위에 올랐으니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여러 번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임금의 자리를 더럽히게 되었으니 그대들이 잘 처리하라.기울어가는 해, 고려왜 하필 내가 왕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나는 정사에...
등록일
2026-06-19 14:26:53
노국공주와 함께 피난길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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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
고려 말 공민왕은 원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개혁을 추진했으나 홍건적의 침입을 받자 노국공주와 함께 남쪽으로 몽진을 떠나야 했다. 몽진 중 옥천 마니산성에 머무를 때는 개울을 힘들게 건너 절에 가서 나라의 안녕을 빌었다. 그때 칡넝쿨로 급히 만든 다리와 절은 누다리와 영국사(寧國寺)로 남아 있다. 청주에 이르러서는 전후의 새로운 인재 등용을 위해 취경루에서 과거시험을 실시했다.생명의 땅 청주에서 오늘 33인의 인재를 발탁하니 이 또한 길운이다. 아름답다 청주여, 고상하다 취경루여! 비록 피와 통곡소리 가득한 전란을 겪었지만 고려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두 마음을 품지 말고 끝까지 충성하라!원으로부터 독립된 고려를 꿈꾸던 군주고려 말 혼란스러운 국내외 정세 가운데 왕위를 이어받은 공민왕은 젊은 패기와 새로...
등록일
2026-06-19 14:18:05
꿈에 본 그대로 아름다운 수주팔봉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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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강화도로 유배되어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왕실의 부름으로 왕이 된 철종은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에 휘둘려 제대로 정사를 펼치지 못했다. 나날이 건강이 악화되던 중 꿈에서 아름다운 절경을 보고 그와 똑같은 곳을 수소문한 끝에 충북 충주의 수주팔봉에 행차했다.꿈에서 본 것과 똑같은 강물과 기암괴석의 수려한 절경에 철종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지금도 왕이 밟고 다닌 곳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왕다래기마을이 남아 있다.바로 이곳이구나. 내가 꿈에서 발을 담그고 놀며 물에 비친 여덟 개의 봉우리를 바라본 곳! 수주팔봉의 아름다움이 내 마음까지 위로하는구나!이씨의 나라인가 김씨의 나라인가무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철종(哲宗)은 더욱 가슴이 답답하였다. 어린 시절을 보낸 강화도의 모습만 날이 갈수록 눈에 선하였다. 강화의 시...
등록일
2026-06-19 14:12:19
궁뜰과 뱃재에서 신라를 그리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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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敬順王)은 무너져 가는 왕조에 괴로워하다가 고려 왕건의 친화정책에 감화되어 결국 신라를 고려 왕건에게 바치고 만다. 그리고 망국의 한을 안고 명산 대찰을 찾아다니다가 충북 제천시 방학리의 궁뜰이란 마을에 들어가 행궁을 짓고 살았다. 또한 미륵산에 미륵불을 새기도록 하고 미륵산의 황산사에 종을 달도록 하여, 매일 아침저녁으로 종소리가 들릴 때면 고개에 올라가 망국의 죄를 빌었다. 사람들은 왕이 절을 하던 고개를 뱃재라고 부르게 되었다.오직 백성들의 목숨만이라도 지키고자 신라의 천년 사직을 내려놓았지만 망국의 왕이 어찌 백성 앞에 고개를 들 수 있으랴. 궁뜰에 묻혀 살며 아침저녁으로 고개에 올라가 속죄의 절을 하리라.부드러움과 강함 사이에서927년 후백제의 견훤은 신라 서라벌(경주...
등록일
2026-06-19 14: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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