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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를 얻기 위해 세 번 행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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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을 앞둔 이성계(李成桂)는 자신을 뒷받침해 줄 인재가 필요했다. 배극렴이라는 장군은 고려 말 많은 무공을 세운 출중한 인물이었는데 갑자기 세상을 등지고 산에서 은거했다. 이에 이성계는 배극렴(裵克廉)이라는 인재를 얻기 위해 세 번이나 충북 충주시의 삼방리(三訪里)에 있는 어래산(御來山)을 찾아갔고 배극렴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의 공신으로서 조선 제1대 재상이 되었다.무릇 새는 나무를 가려 깃들고 지혜로운 자는 주인을 가려서 섬기는 법이오. 이제 고려 왕조는 썩은 살과도 같으니 어찌 새로운 세상을 꿈꾸지 않을 수 있겠소. 나를 도와주기를 간청하오. 나 이성계는 그대가 필요하오!개혁을 향한 첫걸음1388년(고려 우왕 14) 고려 장수 이성계는 요동 땅을 치기 위해 위화도(威化島)까지 진군했다. 하지...
등록일
2026-06-26 13:59:49
청주에서 국난 극복을 위해 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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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위하자마자 거란의 침입이라는 국난을 만난 현종은 개경을 떠나 몽진 길에 나섰다. 어렵게 거란군의 추격을 따돌리며 경기도를 거쳐 전남 나주까지 내려갔던 그는 고려군이 개경을 수복하자 청주에 머물렀다. 청주에서 현종은 국가적 불교 행사인 연등회를 열고 그 당시 동아시아의 최대 관심이던 대장경을 각판하겠다는 발원을 함으로써 민심을 수습하고 국난 극복의 의지를 다졌다.고려 국왕의 불심과 하나 된 군신들의 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고려는 반드시 (초조)대장경의 판본을 각성(刻成)하겠나이다. 거란이 고려에서 물러가게 하시고 국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숨 막히는 피난 길1010년 10월 거란은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해 왔다. 어려서부터 온갖 수난을 겪으면서 왕위에 오른 현종은 왕이 되자마자 거란 침입...
등록일
2026-06-26 13:17:05
먼 길 떠나며 서울고개에서 눈물 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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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된 단종은 기댈 곳이 없었다. 왕권은 약했고 그 틈을 타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였다. 왕위를 잃고 유배 길에 오른 단종은 충북 제천을 지나다 남천동에서 동현동으로 넘어 가는 고개에서 쉬게 되었다. 고개에서 유배 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고 해서 그 고개 이름이 서운고개로 불리다가 최근에 서울고개가 되었다고 전해진다.내 어찌 이 고개를 넘어 귀양을 가는 것이 원통하지 않겠느냐. 태어나 자란 궁을 떠나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는구나. 이제 가면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고개를 넘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구나.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단종성군 세종이 승하하자 조선은 커다란 구심점을 잃은 채 불안정했다. 보위를 이은 세종의 장남 문종(文宗)은 ...
등록일
2026-06-26 13:02:19
마지막 황제 하룻밤 행궁터에 머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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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이성계는 정통성이 부족한 고려의 우왕(禑王)과 창왕(昌王)을 폐위시키고, 공양왕(恭讓王)을 세웠다. 고려 말의 어지러운 정국 속에서 번뇌하던 공양왕은 시름을 달래고자 변복을 하고 충북 도락산 자락에 숨어들었다. 그곳에는 짚신을 만들며 살아가는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풍수지리에 혜안이 있는 기인이었다. 공양왕은 신분을 숨겼지만 노인은오늘밤 우리 집이 궁궐터가 될 것이라며 왕을 알아보고 절했다.산 속의 초막이 행궁이 된 것이다.나는 일평생 입을 것, 먹을 것과 시중할 사람이 모두 풍족하게 편안히 지내다가 갑자기 왕위에 올랐으니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여러 번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임금의 자리를 더럽히게 되었으니 그대들이 잘 처리하라.기울어가는 해, 고려왜 하필 내가 왕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나는 정사에...
등록일
2026-06-19 14:26:53
노국공주와 함께 피난길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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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고려 말 공민왕은 원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개혁을 추진했으나 홍건적의 침입을 받자 노국공주와 함께 남쪽으로 몽진을 떠나야 했다. 몽진 중 옥천 마니산성에 머무를 때는 개울을 힘들게 건너 절에 가서 나라의 안녕을 빌었다. 그때 칡넝쿨로 급히 만든 다리와 절은 누다리와 영국사(寧國寺)로 남아 있다. 청주에 이르러서는 전후의 새로운 인재 등용을 위해 취경루에서 과거시험을 실시했다.생명의 땅 청주에서 오늘 33인의 인재를 발탁하니 이 또한 길운이다. 아름답다 청주여, 고상하다 취경루여! 비록 피와 통곡소리 가득한 전란을 겪었지만 고려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두 마음을 품지 말고 끝까지 충성하라!원으로부터 독립된 고려를 꿈꾸던 군주고려 말 혼란스러운 국내외 정세 가운데 왕위를 이어받은 공민왕은 젊은 패기와 새로...
등록일
2026-06-19 14:18:05
꿈에 본 그대로 아름다운 수주팔봉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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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강화도로 유배되어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왕실의 부름으로 왕이 된 철종은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에 휘둘려 제대로 정사를 펼치지 못했다. 나날이 건강이 악화되던 중 꿈에서 아름다운 절경을 보고 그와 똑같은 곳을 수소문한 끝에 충북 충주의 수주팔봉에 행차했다.꿈에서 본 것과 똑같은 강물과 기암괴석의 수려한 절경에 철종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지금도 왕이 밟고 다닌 곳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왕다래기마을이 남아 있다.바로 이곳이구나. 내가 꿈에서 발을 담그고 놀며 물에 비친 여덟 개의 봉우리를 바라본 곳! 수주팔봉의 아름다움이 내 마음까지 위로하는구나!이씨의 나라인가 김씨의 나라인가무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철종(哲宗)은 더욱 가슴이 답답하였다. 어린 시절을 보낸 강화도의 모습만 날이 갈수록 눈에 선하였다. 강화의 시...
등록일
2026-06-19 14:12:19
궁뜰과 뱃재에서 신라를 그리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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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敬順王)은 무너져 가는 왕조에 괴로워하다가 고려 왕건의 친화정책에 감화되어 결국 신라를 고려 왕건에게 바치고 만다. 그리고 망국의 한을 안고 명산 대찰을 찾아다니다가 충북 제천시 방학리의 궁뜰이란 마을에 들어가 행궁을 짓고 살았다. 또한 미륵산에 미륵불을 새기도록 하고 미륵산의 황산사에 종을 달도록 하여, 매일 아침저녁으로 종소리가 들릴 때면 고개에 올라가 망국의 죄를 빌었다. 사람들은 왕이 절을 하던 고개를 뱃재라고 부르게 되었다.오직 백성들의 목숨만이라도 지키고자 신라의 천년 사직을 내려놓았지만 망국의 왕이 어찌 백성 앞에 고개를 들 수 있으랴. 궁뜰에 묻혀 살며 아침저녁으로 고개에 올라가 속죄의 절을 하리라.부드러움과 강함 사이에서927년 후백제의 견훤은 신라 서라벌(경주...
등록일
2026-06-19 14:06:40
백성들의 삶을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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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병자호란이 끝난 후 백성들의 삶이 더욱 어려워진 때 충청감사 김육이 대동선혜법 시행을 청함에 따라 인조는 백성들의 삶을 직접 살펴보고자 충북으로 행차했다. 작은 마을에서 하룻밤을 쉬게 되었는데 신비한 꿈을 꾸고 그 지역의 산세가 아름다움에 감탄하였다. 그해 그 지역이 대풍을 이루었고 인조가 산세의 덕스러움을 칭찬했다고 해서가덕면, 인조가 행차했다고 해서인차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이 곳의 산세가 아름답고 덕이 가득하구나. 덕은 인간의 길이니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이곳 백성들 또한 인심이 넉넉하니, 지닌 덕에 더욱 덕을 더하여 군자의 덕을 이루도록 하라!전란으로 황폐해진 민초들의 삶병자호란이 끝난 후 인조는 더욱 말이 적어졌다.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을 때도 있어서 측근에서 모시는 궁녀들조차 그의...
등록일
2026-06-18 16:24:03
삼국통일의 군주 가야지무(伽倻之舞)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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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신라의 태종무열왕 김춘추는 백제를 정벌함으로써 삼국통일의 물꼬를 텄다. 뒤를 이은 김춘추의 아들 문무왕(文武王)은 백제에 이어 고구려까지 정벌하고 야욕을 드러내는 당나라 세력까지 축출하여 삼국통일을 완성한 왕이다. 문무왕이 고구려의 평양성을 함락시킨 후, 개선하여 돌아오는 길에 충주지역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다. 연회에서 능안이라는 미소년이 가야의 춤을 추었다. 왕이 그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친히 술잔을 따라주며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과인이 선친들과 하늘의 은혜를 입어 좋은 때를 만나고 좋은 장수들을 만나 아버지와 함께 백제를 치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고구려까지 정벌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아버지 김춘추의 꿈을 따라 법민아삼국이 나뉘어 피를 흘리며 끊임없이 백성들이 죽어나가...
등록일
2026-05-18 16:15:01
속리산에 올라 국태민안을 기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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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신라 왕실 사람들은 불심이 깊었다. 특히 진평왕(眞平王)은 석가모니 아버지의 이름인백정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백제 무왕이 성왕의 원수를 갚겠다며 끊임없이 침입해 와 수세에 몰린 진평왕은 속리산 법주사 용화보전에 있는 장육상(丈六像)에 가서 국태민안을 빌었다. 또한 기원을 드린 후 뒤에 있는 산호대라는 높은 바위에 올라 만세를 부르고, 아침이면 배석대에 올라 일출을 보며 다시 신라의 번영을 빌었다. 덕만공주(훗날 선덕여왕) 등 왕실 사람들도 함께 행차했다고 전해진다.진흥대왕이시여, 대왕께서 남겨주신 이 영토를 원수 백제가 노략질하는 것을 막아주시옵소서. 부처님의 은덕으로 신라가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계속되는 백제 무왕의 신라 침략어찌하여 무왕(武王)은 잠시도 쉬지 않고 우리...
등록일
2026-05-16 11: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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