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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이야기

충북 기념물 충주 대림산 봉수대 [충주시]

작성자 전체관리자  조회수 290 등록일 2021-10-21

  충주 대림산 봉수대의 행정구역상 위치는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산82-2임·산99-2임, 살미면 향산리 산51-2임 일대를 포함하며, 대림산(大林山, 487.5m) 정상부에 해당한다. 대림산봉수는 조선시대 충북지역의 제 2거(炬) 직봉(直烽)과 2개의 간봉(間烽)의 내지봉수 노선(內地烽燧 路線) 중 계립령을 넘는 간봉노선에 해당한다.

  발굴조사결과 봉수대 내부 평탄지에서 연조(煙竈) 5기, 석축유구 1기, 수혈주거지 1기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봉수대 외곽을 구성하는 방호벽(防護壁), 계단 형태의 출입시설 2개소, 봉수대 외곽을 나선형 형태로 돌아가는 외환도(外環道), 재폐기장 등이 확인되었다.

 

    

[2017년 연조 5기 발굴조사]

 

  평면형태는 타원형에 가까운 말각방형으로 평탄지는 동서 약 15m, 남북 약 18m의 규모이다. 그리고 둘레는 방호벽 외연으로 돌면 약 70m이다. 내부시설인 연조(煙조)는 총 5기가 확인되었다. 이들 연조는 일직선상에 위치하지 않고, 북쪽 방호벽에서 동벽을 거쳐 남쪽 방호벽 상면까지‘ ㄱ’자 모양으로 배치되었다. 연조의 평면형태는 모두 원형이며, 평균 직경은 약 190cm 정도이다. 연조간에 중심간격은 약 5~7m 정도이다. 평상시 거화(炬火)했던 연조는 서쪽의 대응봉수인 마산봉수 방향에 위치한 1호 연조로 추정된다. 한편 4호 연조 아래의 수혈주거지는 조선 전기에 축조되어, 18~19세기경까지 사용되다가, 4호 연조를 조성하면서 폐기되었다. 따라서 4호 연조는 19세기 이후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동서남북 방호벽 발굴조사]

 

  외곽시설인 방호벽(防護壁)은 평탄지를 조성하면서 나온 토사로 기저층 및 석축 안쪽까지 내탁하는 수법으로 쌓아올렸다. 석축은 주변의 할석을 난층 쌓기 하였고, 잔존하는 최대높이는 약 200cm 정도이다. 북쪽 방호벽의 안쪽과 바깥쪽 석축, 바깥쪽 석축의 변화양상으로 보아 방호벽은 조선전기에 축조된 이후 3차례 이상의 개보수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방호벽 상단의 담장은 봉수가 폐기된 이후에 6.25 한국전쟁 당시 붕괴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출입시설은 2개의 계단시설(階段施設)과 봉수대 외곽의 1~3중의 외환도(外環道)가 확인되었다. 계단시설은 남쪽과 서쪽 방호벽 중간에‘ 之’자 형태로 설치하였고, 이러한 형태는 기존의 조사사례에 비교하면 특이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외곽의 외환도(外環道)는 폭 3m 정도이며 나선형 형태로 돌아가고 있다. 외환도는 성곽의 회곽도와 같이 인력의 이동, 물자의 운반, 순찰 및 외부에 대한 방어시설의 기능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봉수대 평탄지 출토유물]

 

  출토된 유물 가운데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유물은 대림산 봉수대가 조선시대 전기에 축조되기 이전 대림산성의 경영(經營)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유물 가운데 백자류, 옹기류, 청해파문(靑海波紋) 기와류 등은 18~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수마석(水磨石 ; 강자갈)은 봉수대 방호용 투석무기로, 내지봉수에서 조사된 사례가 드물어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대림산 봉수대는 문헌기록에 의하면 조선시대 전기에 축조되었다고 알려졌다. 금번 발굴조사결과 4호 연조 및 수혈주거지의 중복관계와 북쪽 방호벽의 3차례 이상의 개보수 상황 등을 통해 보면 대림산봉수대는 조선전기에 축조된 이후, 18~19세기경에 대대적인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대림산 봉수대는 1870년(고종 6년) 편찬된『忠州郡邑誌』에 대림산봉수가 폐지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조선 말엽에 전신전화의 설치로 인해 봉수의 존재가치를 상실하여 고종 31년(1894)에 봉수제도의 폐지와 그 다음해에 각처 봉수대와 봉군(烽軍)을 폐지함으로써 모든 봉수가 최종적으로 폐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대림산 봉수대는 6.25 한국전쟁으로 인해 상당 부분 교란되었다. 전투과정 속에서 내부 평탄지 외연에 참호시설이 설치되었고, 방호벽 상단의 담장도 이 당시 유실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충주 대림산봉수는 금번 발굴조사 결과 이후 역사적 중요성 및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2월 1일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 168호로 지정되었다.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2019, 『충주 대림산 봉수대 발굴조사보고서』, 일광. 일부 내용 발췌

2017 기념 168 충주 대림산 봉수 [봉수대 모습 전경2] [충주 대림산 봉수대 발굴조사 보고서]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JPG [1,411.4 K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