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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Archives of Chungbuk Cultural Heritage

문화유산 검색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국가지정 > 국보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문화유산 검색
한자명 淸州 龍頭寺址 鐵幢竿
영문명 Iron Flagpole at Yongdusa Temple Site, Cheongju
지정일 1962-12-20
관할시군 청주시
이칭/별칭 국보 41

문화재 설명정보

청주시의 가장 번화가인 성안길의 용두사지에 홀로 남아 있는 용두사지 철당간은 시내 중심가에 소재한 국보로서 지역 역사문화의 상징적 유물이다.
당간은 사찰의 상징인 당기(幢旗)를 걸기 위한 시설로서,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전국적으로 많은 사찰이 세워짐에 따라 당간도 많이 건립되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당간은 없어지고 당간지주만 남은 곳이 대부분이다. 당간까지 남은 것 중 나주 동문 밖과 담양 읍내리에 석제 당간이 남아 있고 철당간은 공주 갑사와 이곳 용두사지 등에 남아 있을 뿐이다. 특히 용두사지 철당간은 세울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당간기가 양각으로 기록되어 있어 주목을 받는다.
용두사는 창건과 폐사에 대한 문헌기록이 없어 자세한 연혁을 알 수 없다. 단지 1천년 이상을 제자리에 서있는 철당간에 남아있는 기록을 통해 절 이름과 당간을 제작한 고려 초기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각종 지리지에는 철당간에 대한 기록을 빠뜨리지 않고 있는데 풍수지리와 관련하여 청주의 지형을 배의 모양으로 보고 철당간을 돛대[銅檣]로 해석하고 있어 주목된다.
당간의 밑에서 세 번째 철통에 양각으로 새겨진 당간기를 보면 이 당간의 건립연대를 ‘준풍(峻豊) 3년’이라 기록하고 있다. 준풍 3년은 고려 광종의 독자적인 연호로서 962년(광종 13)에 해당되므로 이보다 앞선 시기에 용두사가 창건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철당간의 양 옆에서 지탱해주는 두 지주의 양식이 약간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데 하나는 통일신라시대의 조성수법을 보여 용두사의 처음 창건시기를 통일신라시대로 올려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당간기에는 이 당간이 고려 초 청주의 대표적 호족인 김예종(金芮宗)·김희일(金希一) 형제 양가의 발원에 의해 세워졌고 30단의 철통으로 60척의 높이였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용두사는 고려 초기에 청주의 호족이었던 청주김씨 일가의 원찰(願刹)로 경영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후 청주읍성이 축조되고 오늘날에는 시내의 중심 사업지역으로 변하고 주변에 고층 건물들이 들어차서 원래의 사역이나 가람배치 등을 전혀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철당간을 구리돛대[銅檣]라 하여 “고을 성안 용두사에 있다. 절은 폐사가 되었지만 돛대는 남아 있으며, 높이가 10여 길이다. 세상에서 전하거늘 처음 주(州)를 설치할 때에 술자(術者)의 말을 써서 이것을 세워 배가 가는 형국을 나타내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이승소(李承召)가 철당간을 보고 읊은 시를 소개하고 있는데, “우뚝 서서 백 자나 높이 솟았으니/오가는 사람이 방황하는 것 같다 하여/누가 구리 기둥을 만계(蠻溪) 위에 옮겨다 세웠는고/한나라 동산의 금줄기인가 싶구나/뿌리는 깊이 박혀 지축에 이었고/꼭대기는 구름 밖에 치솟아 은하수를 꿰뚫었네/옛사람 이런 세운 뜻이 없지 않으니/큰 고을과 더불어 한 지붕을 진압함이라네”라고 하여 당간의 웅건한 모습을 표현하였다.
당간은 무쇠를 주조하여 만들었으며 돌로 만든 석조 당간지주는 아래가 넓고 위가 좁은 전형적인 양식으로 양쪽 밖으로 곡선을 그리고 있는 단순한 기둥 형태이다. 지주의 상단부 안쪽에 홈을 파고 철제 고리로 연결하여 두 지주 사이에 있는 당간을 지탱하도록 하였다. 지주 사이에는 좌석을 놓아 당간의 밑을 받치고 있다. 철통은 본래 30단이었으나 지금은 20단만 남아 있다. 그리고 당간의 맨 꼭대기에는 도르래를 장치하기 위한 조형물이 있었을 것인데 지금은 없어져 그 형태를 알 수 없으나 절 이름으로 보아 용머리 장식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소개된 서원팔경(西原八景) 가운데 ‘동장철학(銅檣鐵鶴)’이 제6경으로 되어 있어 철당간 위에 쇠로 만든 학 모양의 조형물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기도 하지만, 용두를 학으로 보았을 가능성도 있고 추상적인 표현일 수도 있다.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은 건립연도가 정확히 밝혀진 유일한 예로서 우리나라의 당간을 연구하는데 필수적인 실물 자료이며, 청주지역의 불교문화와 읍성지역의 변천사를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Located in the downtown area of Cheongju, this iron flagpole is one of the three oldest temple flagpoles remaining today, the other two being those of Gapsa Temple in Gongju and Chiljangsa Temple in Anseong. It is also the only one of the three to bear an inscription concerning its background, showing that it belonged to a Buddhist temple called Yongdusa that was active in the area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The pole originally consisted of thirty iron pipes of which twenty remain today. Experts believe that the top of the pole was originally fitted with a pulley block, possibly shaped like a dragon’s head, as suggested by the name of the temple.

문화재 상세정보

국보 41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당간
종교신앙 > 불교 > 기타
고려시대
청주시
1962-12-20
-
건조물>석조건축물류/당간지주
-
지주 석재, 당간 철재
당간
당간부, 지주부, 기단부
지주높이4.2m, 철간높이12.7m
1기
1,615.0
대표 소재지 공개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48-19
대표 보관장소 공개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48-19

소유 관리 점유 정보

참고 문헌

청주대학교도시지역개발연구소, 1998~1999, 『용두사지 철당간 정밀실측』.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한서대학교부설예술품보존관리연구소, 2002, 『용두사지 철당간 보존처리』.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한림보존테크, 2006, 『용두사지 철당간 보존처리』.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비전문화유산, 2011, 『용두사지 철당간 보존처리』.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비전문화유산, 2014, 『용두사지 철당간 보존처리』.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
불교중앙박물관, 2019, 『금석문 탁본 조사 보고서 강원도Ⅱ 충청북도』, 도반미디어. [아카이브 > 학술자료 수록]